살아남은 자들이 기록한 '강남역 여성살해사건'…198일 동안 무엇을 바꾸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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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들이 기록한 '강남역 여성살해사건'…198일 동안 무엇을 바꾸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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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01 12:30:25 | 수정 : 2016-12-05 13:3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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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미리, "여성들이 '혐오'라는 가랑비에 젖어 있던 자신을 마주했다"
이미경, "여성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여성 피해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 확인"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이 낳은 자식’, “혐오 가랑비에 젖은 사실 깨달은 엄청난 사건…
198일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5월 17일 새벽 서울 강남의 한 노래방 건물 화장실에서 모르는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한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범인은 사회생활에서 여성에게 무시를 당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하루 유동인구가 100만 명에 달하는 강남역 인근에서 여성이 모르는 남성에 의해 처참하게 사망한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이다. 이 사건이 더욱 주목을 받는 것은 이튿날부터 강남역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적극적인 추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수많은 여성들은 자신이 피해자일 있었다며 절망했고 '우연히 살아남은' 자로서 세상을 바꾸겠다고 다짐했다. 당시 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전주·부천·울산·청주에서 추모 공간을 운영했고 추모객들은 3만 5350건(5월 18일~7월 15일)의 추모 메시지를 남겼다. 8월 31일까지 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4976만 3449건의 글이 올라왔고, 86만 6151건의 보도가 있었다.

세계 여성폭력추방주간을 맞아 지난달 30일 서울여성플라자 성평등도서관에서 9개 지역 24개 기관과 단체가 '성평등을 향한 198일간의 기록과 기억'이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열렸다. 부제는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을 중심으로'다.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추모자료와 미디어자료, 시민주체 활동자료를 어떻게 기록했는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여성폭력 추방을 위한 '나는 약속합니다' 캠페인을 알렸다.

이효정 서울시여성가족재단 경영기획실장은 "기록되지 않는 역사는 기억될 수 없고 기억하지 않으면 달라지지 않는다"며 이 사건을 기록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 실장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여성폭력 범죄로 인한 아픔을 사회적 기억으로 전환하고 성평등한 미래를 약속하는 가장 실질적인 방법으로 사회적 슬픔을 치유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추진"했다고 밝혔다. 시민이 남긴 추모 메시지와 물품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남긴 자기고백과 온오프라인 게시글까지 기록했다. 단순히 모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추모메시지를 데이터로 만들어 내용·특성에 따라 분류했다. 자발적으로 추모메시지를 지키고 보존해 옮긴 시민주체들 일명 '총대(‘총대를 메다’에서 따옴)' 10명이 당시의 기억과 심경 현장 상황을 인터뷰로 남기기도 했다.

이날 행사 중 '토론마당' 순서에서는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를 함께 고민했다. 서울 강남역봉사단 총대로 활동했던 A씨는 추모현장에서 아무렇지 않게 발생하는 위협과 몰래카메라(도둑촬영) 실태가 공포스러운 수준이었다고 털어놨다. 사회자는 카메라 공포를 호소하는 A씨를 위해 취재진에게 촬영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A씨는 "인터넷에서 추모 분위기를 접하고 강남역에 나갔다가 (추모 메시지 등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곳에서 밤을 샐 작정을 했다. 나의 행동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반대하는 사람들은 제가 잘못하는 것 인양 촬영을 하더니 인터넷에 올려 마녀사냥을 하겠다고 하더라. 내가 여자라서 이런 일을 당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좋은 마음으로 한 행동인데 (반대하는 사람들은) 욕을 하고 겁박하며 촬영을 했다. 결국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추모 메시지를 철거했다. 그 자체가 슬펐다. 이후에는 공공장소에서도 플래시가 터지면 떨린다. 지금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이후 탄생한 '페미니즘 액션그룹 강남역 10번출구' 활동가 B씨도 여성들을 함부로 촬영하는 일부 남성들의 위협적인 행동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B씨는 5월 19일부터 9일 동안 자유발언대를 진행했다. 많은 여성들이 공공의 장에서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이 여성혐오 범죄라고 주장했으며, 자신의 삶에서 경험한 여성혐오를 증언했다.

B씨는 "현장에서 제가 울컥한 것은 몰카였다. 더 많은 여성이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 요청을 했지만 용기를 낸 여성의 사진이 온라인에 올라가 말할 수 없는 모욕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어 힘들었다. 현장에서는 아무리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해도 찍는 사람들은 그냥 물러나는 법이 없었다. 위협하고 때릴 것처럼 시비를 거는 사례가 많았다. 무력으로 뺏을 수도 없어 무력감과 죄책감으로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더 힘을 낼 수 있었던 사례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 남성이 B씨를 무시하고 계속 촬영해서 눈물이 목 끝까지 차올랐을 때 한 중년 여성이 말 없이 등으로 그 카메라를 가려주었다는 것이다. B씨는 "그 모습을 보며 아주 오래된 구호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는 구호를 떠올렸다. 많은 여성이 용기를 내 공론의 장에서 자신이 경험한 '여성혐오'를 증언하고 피해자로뿐 아니라 동시대를 사는 증인으로서, 실천적 행동자로서 증언하고 말할 수 있도록 더 강한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했다.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김홍미리 씨는 "그 전에도 여성들은 꾸준히 살해됐는데 왜 5월 17일이었을까. '검정 마스크(추모 현장에 온 여성들은 누군가 자신의 얼굴을 촬영해 온라인에 올린 후 인신공격할 것을 우려해 검정 마스크를 착용하였다-편집자 주) '다. 여성의 말하기를 허락하지 않은 세상에서 여성이 말하려고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확연히 드러낸 것이 5월 17일 그후다. 또 여성에게 안전하지 않은데 안전하다고 가르쳐온 구조가 확연하게 드러난 것 역시 5월 17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홍미리 씨는 '여성 침묵시키기 시도'가 성공하지 못했다며, "3만 5350장의 메모지가 해낸 것이 무엇인가. 첫 번째는 많은 여성이 말하기 시작했고 두 번째는 질문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너 왜 늦었니', '왜 술 먹고 다니니', '그 시간에 왜 화장실에 갔니' 등 여성을 향한 명령과 질책을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문제를 여성이 아니라 나에게 질문하도록 바뀌었다. 페미니스트 뿐 아니라 개인을 움직이게 한 영향력이다. 또 '왜 남성이 잠재적 가해자냐'는 말을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위치를 나타내는 좌표를 보여줌으로써 구조의 문제로 인식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또 "이 사건은 '여성험오'라는 가랑비를 어떻게 말릴 것인가 하는 문제다. 비는 언제나 내리고 있고 옷은 언제나 젖어 있었다. 여성에게 인간성을 제거하는 다양한 방식 즉 젖어 있던 옷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혐오라는 가랑비를 어떻게 말릴 것인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비를 말릴 수 있는 방법은 실천과 행동 뿐"이라고 설명했다.

오찬호 사회학자는 "많은 여성이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일 수 있다'고 했을 때 많은 남성은 '왜 내가 가해자여야 하는가'라고 반론했다. 그 이유는 피부로 체감하는 공포의 차이 때문이다. 우리가 이런 현상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을 인식하면 좋겠다. 여성이 피부로 느끼는 공포의 수준을 오늘보다 내일 더 줄일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 소장은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이후로 새로운 페미니스트와 그동안 소리내지 않았던 분들과 여러 행사를 했다. 이번에 만난 친구들은 저희들에게 '달라져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여기서 나온 구호는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등이다. 새로운 세계로 발을 디딘 느낌이었다"며, "여성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기존의 남성중심적 시각과 여성 피해자의 목소리를 배제했던 것에서 벗어나 피해자가 겪는 고통과 상황을 표현하고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런 움직임이 많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게 제가 체감한 희망"이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또 "한 원로 여성운동가는 퇴임하며 '사회운동은 예술과 본성이 유사하다. 고독·기쁨·보람의 세계이고 고통스럽고 아름답고 감동이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 시대에 적절한 새로운 버전으로 수정하고 업그레이드 한 운동지침을 만들기를 바란다. 운동은 시간을 먹고 자라며 사소한 양적 변화가 쌓여서 질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운동 자체의 원리를 상기하라'고 하더라. 그런 의미에서 5.17 사건을 계기로 인권운동하는 사람으로서 성폭력의 개념이 무엇인지 근원적인 질문을 하면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은 우리에게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주었다. 우리사회에 누적한 여성 차별·비하·혐오에 대한 많은 기억과 경험이 터져 나올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주변에서 잊도록 강요하고 사소한 것으로 치부했던 하지만 본인에게는 크나큰 상처와 고통이었던 기억과 경험이 공적 공감에서 터져 나옴으로써 이 문제를 좀 더 절박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며, 서울시가 추진하는 정책을 되짚어보겠다고 약속했다.

행사에 참석한 한 여성은 '내가 겪은 여성 혐오·폭력'을 주제로 경험을 공유하며 "취업 승진에서 '남성'이라는 게 최고의 스펙이고 프리패스라는 말을 절실히 느낀다. 같은 직급이라도 남성에게는 직함을 붙이고 존대하는데 여성에게는 '미스' 붙이고 '야'라고 반말을 한다.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강남 여성살해사건이 낳은 자식'이라고 표현한 여성은 "5월 19일에 강남역에 갔다가 여성들이 용기를 내서 자신이 겪은 여성혐오를 말하는 것을 보면서 제가 그동안 억압당하고 아팠던 것이 여성혐오와 그 구조에서 비롯한 것임을 '혐오'라는 가랑비에 젖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에게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 사건 이후로 제 삶은 바뀌었다. 우리가 왜 아파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젠더'에 눈을 뜨고 여성학 석사 과정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슬 기자  [dew@newshank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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