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2018분 이어 말하기…성폭력 피해 경험 넘어 사회 구조적 문제 꿰뚫어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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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2018분 이어 말하기…성폭력 피해 경험 넘어 사회 구조적 문제 꿰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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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3-23 14:55:38 | 수정 : 2018-03-23 18: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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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내게만 성범죄자가 꼬인다고? 그건 나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가해자가 많은 것”
23일 오전 2시께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투가 바꿀 세상, 우리가 만들자 2018분 동안의 이어말하기' 현장. (뉴스한국)
‘미투가 바꿀 세상, 우리가 만들자 2018분 동안의 이어말하기’가 22일 오전 9시 22분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시작했다. 340여 개 여성·노동·시민단체와 160여 명의 개인이 참여해 만든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이하 미투시민행동)’이 주최한 이 행사는 23일 오전 2시께를 지나며 이어말하기 목표의 절반인 1009분을 돌파했다. 이 시각까지 1000여 명이 마이크를 잡았다. 대중 앞에 서느라 긴장하고 초강력 꽃샘추위 칼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면서도, 성폭력이 가능한 사회 구조를 질타하는 목소리만큼은 단단했다.

22일 오후 11시 20분께 자신을 페미니스트 활동가라고 소개한 발표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근 20년을 살면서 끊임없이 희롱의 말을 듣고 ‘만져지는’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말했다. 이 활동가의 말을 일부 발췌한다.

“그저 기구한 팔자를 타고 나서 겪는 것인가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나처럼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피해를 당한 우리의 공통점은 여성이었다.…‘왜 여성이라는 이유로 조심하고 긴장해야 하나’ 늘 이렇게 묻지만 해답은 없다. 왜냐하면 저를 불안하게 하는 이들이 ‘왜 나를 잠재적 범죄자로 모느냐’고 질타하기 때문이다. 개에게 한 번만 물려도 평생 개를 무서워하고 물에 한 번 빠져도 평생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에게는 ‘그럴 수 있어’라고 이해하지, ‘예민하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살면서 성폭력 위협을 받는 여성들에게는 ‘그럴 수 있어’라고 하지 않고 ‘예민하다’고 몰아간다. 저는 그저 안전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남성으로 미투운동을 접한 소회를 밝히겠다며 무대에 선 경우도 있다. 여성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그는 “세상을 향해 자신의 고통을 꺼낸 피해자들의 용기에 놀랐다. 한 사람 두 사람 점점 많은 이들이 여기에 동참했다. 자신의 피해를 공개하는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경의’라는 단어는 과하지 않다”고 입을 열었다. 아래는 발언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은 만연하지만 심각할 정도로 은폐된 폭력이다. 미투운동은 이 암담한 현실을 뚫고 있다.…미투운동에 자성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많은 이들은 ‘이제 여성을 어떻게 만나겠나’·‘여성과 같이 밥도 먹지 말고 술도 마시지 말고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며 소위 펜스룰을 말한다. 하지만 어떤 여성을 만나건 인격적으로 대하고 폭력을 행하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치 여성이 주변에 있는 게 문제인 것처럼 말하지 말라. 문제는 당신이다.…저를 포함해 남성은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눈치를 봐야 한다. 지금껏 자신의 말을 여성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계속 신경 쓰고 점검해야 한다.

남성들에게 묻는다. 자신보다 지위가 높거나 나이가 많거나 성별이 같은 사람을 대할 때 조심성을 가지지 않았나. 소위 남성들의 ‘형님 문화’에서는 이런 태도가 관례이지 않았나. 왜 여성들을 대할 때는 이런 문화를 버렸나. 평등하지 않은 성별이라서 그런가.…지금 남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성찰이지 자기 연민이 아니다. 잘못을 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미투운동은 남성이 회피한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 공론화를 가십으로 소비하며 피해자를 비난할 것인가. 조용한 피해자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그때를 그리워하겠나. 아니면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나.

결국 두 가지다. 더 나은 사람이 될지 퇴보할지.…남성 여러분, 세상을 바꾸고 싶나. 조언한다. 일단 아무것도 하지 말고 미투운동을 들으라.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 변화시키고, 다른 남성에게 ‘달라지라’고 말하라. 한국 남성은 뒤늦은 성장을 할 시간이다”

밤이 깊어지면서 기온은 더 떨어졌다. 무대 앞에는 50여 명이 발언자의 말을 경청했다. 미리 준비한 담요를 덮고, 핫팩을 흔들며 추위를 이겨냈다. 간혹 춥거나 졸린 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움직여 열을 냈다.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투가 바꿀 세상, 우리가 만들자 2018분 동안의 이어말하기' 현장 가벽에 붙은 대자보. (뉴스한국)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서 활동하는 한 활동가는 마이크를 잡고 자신이 몸 담았던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터져 나온 미투운동을 자세히 설명했다. 익명으로 지칭한 교수들의 적나라한 성폭력 행위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이 활동가의 발언을 일부 발췌한다.

“제가 결정적으로 한국외대에 정을 떼고 배울 게 없다고 느낀 것은 임용 과정에서 성차별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 공간이 더 이상 배움의, 학문의 공간이 아니라 차별을 재생산하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 공간을 떠나 현장에서 배우고 있다.

그렇다면 해당 교수들만 싹 갈아치우면 될까. 지금 나오는 미투운동의 가해자는 교수 위주이지만 동기, 친구, 지인, 선후배 간의 성추행과 성희롱도 많다. 그렇다면 한국외대가 진짜 썩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일까. 저는 사회에 나와서도 많은 성희롱을 당했다. 그렇다면 사회이기 때문에 험한 일을 당하는 것일까. 저는 고등학생 때도 성희롱 발언을 들었다. 가정은 안전할까. 아빠에게 성폭력 피해를 말하니 ‘너는 더 큰 권력에 대항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저는 외대를 고발한다. 그리고 사실 모든 사회를 고발하기 위해 나왔다. 저는 여성이 말하면 이 세상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아주 작은 변화를 꿈꾸지 않는다. 가부장제 자체를 박살내는 사회를 원한다.“

같은 곳에서 활동하는 다른 활동가는 “‘결백하다’고 주장하는 남성이라면, 가해자를 보호하지 말라. 2차 가해 하지 말라. 미투운동을 묵살하는 이들에게 ‘안 웃기다’·‘그것은 2차 가해다’라고 말해 달라”고 요구하며, 남성 중심의 젠더 규범과 젠더 권력 구조를 비판했다. 이 단체의 또 다른 활동가는 “제가 겪은 성폭력 경험만 이야기해도 2018분을 다 채울 수 있다”며, 돌발적이고 집요하게 발생하는 성폭력 가해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런 피해를 이야기하면 ‘왜 유독 너에게만 성범죄자가 꼬이냐’고 이상하게 본다. 그런 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만큼의 가해자가 있을 뿐이다”고 지적했다.

동국대학교에 다닌다고 밝힌 한 발언자는 “착각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이 그 성폭력범 한 명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아니다. 구조의 문제다. 성폭력이 일상에 자리 잡는 것을 묵인하고 때로는 인정하는 구조 때문이다. 그 구조는 다른 게 아니다. 우리가 적응하고 살아온 구조다. 우리는 이 속에 녹아들어 살면서 성폭력이 가능한 구조를 재생산하고 있다. 아무도 이 구조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고민과 성찰 없이 ‘사회가 변했으니 성차별은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가벽에 붙은 대자보에는 미투운동을 지지하고, 2차 가해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성폭력이 가능한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날카로운 비판도 있다. 대자보 일부를 발췌한다.

“괜찮다는 말의 어원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나는 너의 사건, 어디선가 있을 또 다른 나의 사건이 마무리되고, 이어질 세대에는 아무도 고통 받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는 이상 괜찮지 않다. 난 그들과 상관이 있다. 나는 괜찮지 않기로 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맙시다. 왜곡된 성관념, 바꾸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 미래는 없습니다.”

“죄책감은 우리가 느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 그들이 느껴야 하는 것이다.”
“폭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 처벌까지 이어지길 바랍니다.”
“동조하지 않고 잘못되었다고 목소리를 내겠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부조리한 사회에서도 여성들은 변화를 이끌 것이며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그 긍정의 변화에 연대한다.”

‘2018분 동안의 이어말하기’는 23일 오후 7시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미투시민행동은 이어말하기가 끝나는 동시에 같은 자리에서 ‘성차별·성폭력 끝장 문화제’를 개최한다.


이슬 기자  [dew@newshank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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