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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인종을 넘어 다양한 형태의 성폭력" 국제개발협력 미투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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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5-29 12:04:50 | 수정 : 2018-05-29 15:3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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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직 실무자·활동가 모여 기자회견 "가해자는 통렬하게 자성해야"
29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국제개발협력 분야의 성폭력 실태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뉴스한국)
전 세계 개발도상국의 경제·사회 발전을 앞당기기 위한 활동인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도 성폭력 피해자들이 속출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올해 2월 7일 국제개발협력 분야 전·현직 실무자·활동가로 구성한 '국제개발협력 미투운동 모임(이하 미투모임)'이 29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 목소리를 알리고 성폭력 피해자를 침묵하게 만든 조직 문화의 변화를 촉구했다.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강슬기 네오브릿지 활동가는 "해외 현장으로 파견하는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20대다. 사회 경험이 적은 때에 파견돼 여러 가지 이유로 침묵당해 왔다. 현지 문화를 존중해야 하니까, 자원활동을 하러 온 것이니까, 사업을 지속해야 하니까. 국제개발협력 분야는 활동 범위가 국내와 해외를 모두 포함하기 때문에 국가와 인종을 넘어 다양한 형태의 성폭력이 있어왔지만 그간 비공식적으로만 토로했다"며, "해외 현장에서 성폭력이 일어날 경우 심각성은 더했다. 도움을 요철할 수 있는 방법도 제한돼 있고 물리적으로 (한국과) 떨어진 만큼 방치되고 쉽게 잊혀지고 성폭력이 발생한 현장에 홀로 남아야 했다"고 토로했다.

강 활동가는 "국제개발협력 현장의 다양한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 활동가들의 존엄성이 짓밟히는 현실을 마주하고 그 동안 우리 자신마저도 모른 채 덮어두었던 상처를 꺼내야 했다"며, "'국제'라는 막연한 환상에 가려진 실제 국제개발협력 현장의 모습을 알려야 했고 올해 2월 미투모임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미투모임이 운영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 페이스북에는 올해 3월부터 피해 사례가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네오브릿지 활동가와 전 비정부기구(NGO) 봉사단원이 피해사례를 대리 낭독했다. 외국에서 한국인이 한국인에게 자행하는 성폭력·성폭력 2차 가해, 현지인이 한국인에게 가하는 폭력, 한국인이 현지인에게 가한 폭력 등 성폭력은 현실 곳곳에서 다양하게 발생했다. 피해 사례 중 일부를 발췌했다.

사례 1.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봉사단원으로 현장에 파견됐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서툰 현지어 실력으로 생활하다보니 유독 본부 직원들의 연락이 반갑고 힘이 됐다. 특히 본부에서 출장을 온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더 설렜다. 현지 사무실을 방문한 단체 대표는 사무실 옆에 있던 지부장 댁으로 저를 이끌었다. 둘만 있는 거실에서, 우리를 위해 선물을 준비해 온 대표에게 그저 감사하기 바빴다. 대낮이었지만 불을 켜지 않아 조금 어두운 공간이었기 때문에 순간 아차 싶어 마지막 감사 인사를 하고 급히 그곳을 빠져나오려는 순간 등 뒤에서 대표가 저를 꼭 안았다. 너무 놀라 뿌리치고 뒤를 돌아 얼굴을 확인했는데 밝게 웃고 있더라.

활동을 마치고 돌아와 속으로 꾹꾹 눌러 담아두었던 그때 그 일을 본부 팀장에게 말했지만 무척 난감해하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제 다음으로 파견된 단원도 성희롱을 당했지만 개선 여지가 없는 것을 알기에 아무데도 말 못하고 혼자 끙끙거렸다.

국제개발협력 미투운동 사회관계망서비스 페이스북 대문 사진 갈무리.
사례 2. 도시 빈민지역에 파견돼 주민들을 위한 도서관 설립을 진행 중이었다. 마을 중학교에서 학교 안에 도서관을 세울 부지를 기부했고 대신 교육청 승인을 받아야 해서 학교 관계자들과 교육청을 방문하는 일정을 잡았다. 방문하는 날 교장선생의 차로 이동했고, 마을에는 오후 6시쯤 도착했는데 이미 주변은 깜깜했다. (학교 관계자 2명이 내리고 교장선생과 나만 남았는데-기자 주) 교장선생은 매우 천천히 운전하며 나에게 '사랑한다'고 했다. 내 손을 7~8회 만지며 허벅지에도 손을 댔다. 그 손은 어깨까지 올라왔다. 나는 손을 뿌리치고 학교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면서 질문을 던졌다.

밖은 매우 어두웠고 들판뿐이어서 너무 무서웠다. 마을까지 가야했고 교장선생은 도서관 설립에 있어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앞으로도 계속 사업을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더 나쁜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아 손을 만지려 할 때 마다 뿌리치면서 학교와 사업 이야기로 시간을 끌었다. 하지만 마을이 보일 때쯤 갑자기 술집 앞에서 차를 멈췄고 술을 마시러 가자고 했다. 나는 '지금 당장 집에 가야 한다'고 언성 높여 이야기했다. 다행히 술집 문은 닫혔지만 교장선생은 나를 계속 쳐다보며 '아내로 삼고 싶다'고 했다. 나는 집에 가야 한다고 계속 말했고 결국 차가 출발했다. 단둘이 차 안에 있었던 30분이 너무 끔찍했다.

첫 해외 현장 파견에 첫 사업이라 정말 열정적으로 했다. 도서관 설립을 함께 준비한 마을 사람들과 학생들의 얼굴이 떠올라 고민했지만 4일이 지난 후 전체 메일로 사건 보고를 했다. 이 메일을 가장 먼저 확인한 사무국 매니저와 통화를 했는데 그는 "다른 활동가들이 흔들릴 수 있으니 이메일 보낸 거 취소해 달라"고 하더라.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조영숙 한국여성단체연합 국제연대센터장은 "성폭력·성희롱 등 여성이 당하는 여러 성적 위험이 사실은 여성에게는 '펜스룰'이다. 펜스룰 때문에 미투 운동이 나왔다.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의사결정 지위에 있는 남성이 이를 흔쾌히 해결하기보다 '현장 분위기 나빠진다'며 여성을 배제하는 결과를 만들고 있다. 미투가 펜스룰을 유발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여성들의 입을 다물게 하려는 일부 남성들의 집단적 저항"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제개발협력 현장뿐만 아니라 성희롱이 둘러싼 현실에서 여성들로 하여금 각 분야에 진출하고 리더십을 갖추고 자기 일 하는 것을 막아왔다"며, "미투운동으로 펜스룰을 바꿔야 한다. 국제협력개발 조직은 인도주의와 성평등을 말하지만 이에 반하는 행동을 하며 조직과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국가가 이 문제의 원인을 짚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제개발협력 미투운동 모임에는 전·현직 국제개발협력 실무·활동가 162명과 11개 시민단체가 참여한다. 이들은 이날 발표한 성명서에서 "국제개발협력이 부르짖는 인권·연대·평등 가치 안에 실무자·활동가의 인권은 존재하지 않았다. 피해 사례를 종합하면 피해자가 가해자보다 취약한 위치에 있거나 후속조치를 적절하게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또한 가해자들은 이 모든 상황을 알고 악용했다"며, "성폭력 문제를 축소·은폐한다고 해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사업에 부정적 영향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이는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는 그릇된 조직 논리일 뿐 되려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2차 가해로 이어져 더 큰 피해와 아픔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내 옆에서 함께하는 동료의 아픔을 함께 공감하지 못하고 내 앞의 동료들을 존중하지 못하면서 국제개발협력에서 주창하는 가치들을 내세우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유·무상 원조기관인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국제협력단과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 등 민간분야에서 성차별·성폭력 가해자와 가해 기관을 확실하게 처벌하고 각종 연대 활동과 현장 파견 등에 제약을 두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슬 기자  [dew@newshank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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