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직업병은 ‘의혹’ 아닌 ‘팩트’…책임 묻고 해결책 찾을 때”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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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직업병은 ‘의혹’ 아닌 ‘팩트’…책임 묻고 해결책 찾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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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7-03 14:40:33 | 수정 : 2018-07-03 16: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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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황유미 씨 사망 이후 직업병 인정받으려 투쟁 ‘현재 진행형’
3일 오전 서울 코엑스서 51회 산업안전보건 강조주간 세미나 열려
3일 오전 서울 코엑스에서 51회 산업보안전보건 강조주간을 맞아 '반도체 직업병 인정 사례 등 분석과 대책'이란 제목의 세미나가 열렸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 추모조직위원회가 주최했다. 왼쪽부터 이종걸 고용노동부 사무관, 공유정옥 작업환경의학 전문의, 임자운 변호사, 이상수 반올림 상임활동가다. 공유 전문의와 임 변호사는 반올림 활동가다. (뉴스한국)
“변호사들이 직업병 인정 투쟁을 하면서 이 자료를 활용하면 좋겠다. 질판위(근로복지공단 산하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산보연(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최근 법원의 직업병 인정 판결 경향이 어떤지 궁금할 때 볼 수 있는 하나의 자료다. 실무적으로 활용하기를 바란다. 제가 몇 년 동안 쌓은 영업비밀과 같은 것인데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사이트에 공개하겠다.”

반올림 활동가인 임자운 변호사가 3일 오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반도체 직업병 인정사례 등 분석과 대책’이란 제목의 산업안전보건 강조주간 세미나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이날 세미나의 첫 발제자로 나서, 반도체 노동자의 질환을 법원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한 사례를 꼼꼼하게 분석했다. 미리 준비해 배포한 발제 자료에는 각 설명을 뒷받침하는 판결문을 각주로 달았다.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후 백혈병으로 2007년에 사망한 故 황유미 씨를 시작으로 법원과 근로복지공단이 산업재해로 인정한 각 13명·15명 사례를 분석한 결과다.

직업병으로 인정한 28명 사례 중 14명은 고인이다. 여성(18명) 노동자가 남성(10명)보다 훨씬 많았다. 사업장은 삼성전자 기흥공장 출신 노동자가 14명으로 제일 많았고 오페레이터(기기 및 장치 운전자) 출신이 17명이다. 재해 노동자들의 담당 공정은 화학약품으로 웨이퍼의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식각’이 8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들은 1983년 9월부터 2014년 10월 사이에 근무한 노동자들로 짧게는 1년 8개월부터 길게는 22년 11개월 동안 일했다. 발생 질병은 백혈병(8명)이 가장 많고 재생불량성빈혈·유방암·뇌종양·다발성경화증·림프종이 각 3명으로 그 뒤를 잇고 폐암이 2명, 난소암·불임·다발성신경병증이 각 1명이다.

임 변호사는 “대법원이 반도체 노동자의 직업병을 인정하는 판결을 살펴보면 의학적·자연과학적 관점이 아닌 규범적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원칙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말했다. 이는 반도체 노동자들의 질병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는 과정의 가장 중요한 전제 이론이었는데, 안전보건상의 위험을 사용자나 근로자 어느 한쪽에만 전가하는 게 아니라 공적 보험으로 산업과 사회가 분담하도록 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을 명시했다는 게 임 변호사의 설명이다.

지난해 8월 삼성 LCD 다발성 경화증 판결에서 대법원은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업무상 질병을 판정하는 기준에 관한 선도적 판시를 했는데 판결문 일부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근로자에게 발생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

특히 희귀질환의 평균 유병률이나 연령별 평균 유병률에 비해 특정 산업 종사자 군이나 특정 사업장에서 그 질환의 발병률 또는 일정 연령대의 발병률이 높거나 사업주의 협조 거부 또는 관련 행정청의 조사 거부나 지연 등으로 그 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들의 종류와 노출 정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이는 상당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

나아가 작업환경에 여러 유해물질이나 유해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개별 유해요인이 특정 질환의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와 함께 판결문과 산보연 역학조사 보고서·질판위 판정서를 살펴보면 모든 반도체 직업병 사건에서 재해 당사자의 업무환경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법원과 근로복지공단 모두 재해 노동자가 작업 현장에서 여러 유해인자를 취급하며 노출됐다는 점을 인정했다. 주로 발암물질을 포함한 독성 화학물질, 전리방사선, 극저주파자기장 등을 언급했다.

2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문회회관에서는 문송면·원진 30주기 추모와 반올림 농성 1000일을 맞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뉴스한국)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은 업무상 질병을 인정할 때 ‘상당 수준의 유해인자 노출이 있었는지’ 증명하라고 요구한다. 문제는 반도체 직업병 사건에서 재해 노동자들이 노출 ‘정도’까지 밝히는 게 대체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직접 증거가 있다면 작업환경 결과측정보고서 등인데 이는 기업이 영업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는다. 이러한 한계를 아는 법원과 근로복지공단은 반도체 공장의 환기 특성, 사업주의 화학물질 관리 문제, 재해 노동자의 작업방식을 통해서 재해 노동자가 얼마나 유해인자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지 미루어 판단했다.

예를 들면, 반도체는 ‘클린룸’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생산 공정을 진행하는데 이곳은 특수 환기시스템을 운영한다. 외부 공기를 특수 필터로 걸러 들여와 내부에서 계속 순환하게 한다. 반도체에 나쁜 영향을 주는 미세먼지를 거르는 방법이다. 이는 반도체에는 좋을지 몰라도 노동자의 건강에는 극단적으로 해롭다.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 배출한 유해물질이 공장에 계속 남아있고 다른 공정에서 나온 유해물질에도 복합적으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임 변호사는 “법원은 삼성 반도체 백혈병 사건을 시작으로 삼성 반도체 다발성경화증, 삼성 LCD 다발성경화증 사건 등에서 이러한 클린룸의 환기 특성을 직업병 발생의 근거로 지목해 왔다”고 말했다.

또한 산재보험법은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의학적 관련성을 요구하지만 법원은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규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임 변호사는 “2007년 사망한 황 씨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반도체 재해 노동자들은 직업병으로 인정받는 투쟁을 하고 있다. 황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가 세상에 이 문제를 처음 알렸을 때는 아무런 자료가 없었지만 피해자와 활동가들은 노동자의 진술에 의존해 작업 환경의 유해성을 알렸다”며, “지금 살펴본 판결문 한 줄 한 줄은 치열한 다툼 끝에 재판부가 ‘직업병이 맞다’고 판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반도체 직업병은 팩트에 관한 문제다. 삼성이 이를 ‘의혹’이라고 치부하는 바람에 황상기 씨가 1000일 동안 노숙 농성을 했다”며, “이 문제는 더 이상 의혹을 밝히는 수준이 아니다. 사실로 인정하고 책임을 묻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종걸 고용노동부 산업보건과 사무관은 반도체 보건관리대책을 대폭 보강해 노동자와 기업 관계자 외에 외부 전문가로 구성한 보건관리추진단을 만들고, 보건관리 활동의 전 과정을 자문한다고 밝혔다. 반도체 보건관리 모니터링위원회를 강화해 대학이나 공단 등의 전문가 그룹이 사업장별로 이행 실적을 평가하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전자산업 안전보건센터 설립도 추진한다고 말했다. 전자산업의 경우 조선업·건설업 등 전통산업에 비해 재해원인과 예방법의 정보 및 연구가 부족한 만큼 독립 조직을 꾸려 효과적인 산업안전보건사업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재해 노동자의 경우 질병이 업무로 인해 발생했음을 입증하기 어려운 면이 많은데 노동자의 입증 책임도 가벼워질 전망이다. 이 사무관은 “희귀질환과 직업성 암 등 업무상 질병의 업무 관련성 판단을 위한 안전기준을 개선하고 재해조사와 역학조사의 절차·방법을 보완해 재해자의 입증 책임을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이 사무관은 최근 법원이 업무와 상당 인과관계를 추단해 인정한 점을 고려해 추정의 원칙을 적용한다고 밝혔다. 유해환경 작업(노출) 기간, 유해물질 노출량 등의 인정기준을 충족하면 반증이 없는 한 인정하고 이를 충족하지 않더라도 의학적 인과관계가 있으면 직업병으로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슬 기자  [dew@newshank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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