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법정기념일 후보 날짜 두고 치열한 공방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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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법정기념일 후보 날짜 두고 치열한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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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0-18 23:22:40 | 수정 : 2018-10-19 00: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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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무장기포일·부안 백산대회일·정읍 황토현전승일·전주 전주화약일 추천 설명
‘고부봉기’ 후보에서 제외 두고 공청회 전 소란…발표자들, “고부봉기 높이 평가”
봉건제도를 개혁하고 일제 침략에서 국권을 수호한 동학농민혁명(1894년)을 기리는 법정기념일 선정 공청회가 열렸다. 법정기념일을 제정하려는 본격적인 움직임은 2004년 시작했지만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한 지역들이 서로 명분을 강조하면서 논의가 길어졌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8월~9월 사이 전국 지자체에 기념일을 추천하라고 통보했고, 전북 고창군·부안군·정읍시·전주시가 각각 날짜를 신청해 18일 서울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17일 오후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동학농민혁명 법정기념일 선정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유바다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고창 무장기포일(4월 25일)을 발표했다. (뉴스한국)
고창군, 무장기포일 4월 25일
유바다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는 2004년 3월 제정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동학농민명예회복법)’이 “1894년 3월에 봉건체제를 개혁하기 위해 1차로 봉기하고”라고 명시한 대목을 들어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은 1894년 음력 3월이고 대다수 연구자들은 음력 3월 20일 즉 무장기포일을 3월에 일어난 첫 봉기로 본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전봉준을 비롯한 고부(당시 전북 고부군·현 정읍시 일원-기자 주) 일대 사람들이 1893년 말 봉기를 계획한 후 1894년 1월 고부봉기를 일으키고 이를 확대하고자 노력했으나 지역적 한계를 넘지 못해 실패한 후 전봉준은 전북 고창군 무장면으로 와 손화중을 비롯한 전라도 각지의 지도자 및 동학교단과 연계해 무장포고문을 발표함으로써 동학농민혁명이 시작했다”며, “무장포고문 발포일인 4월 25일(음력 3월 20일)은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뚜렷하고 분명한 역사성을 지닌다”고 말했다.

17일 오후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동학농민혁명 법정기념일 선정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박대길 국사편찬위원회 지역사료조사위원이 부안군 백산대회일(5월 1일)을 발표했다. (뉴스한국)
부안군, 백산대회일 5월 1일…박대길, “전라북도 한정해 전국화 역행”
박대길 국사편찬위원회 지역사료조사위원은 “동학농민혁명 초기 전개 과정의 정점이 백산대회”라고 역사성을 강조했다. 1894년 1월 10일(음력) 고부봉기로 시작한 혁명의 지휘소를 그해 2월 25일(음) 부안군 백산면에 설치한 후 동학혁명군이 주둔했고 3월 20일(음) 무장기포 후 3월 26일(음력·양력 5월 1일) 백산에서 혁명군으로서 동학농민군이 대오를 편성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백산에서 나온 격문을 보면 반봉건·반외세를 가장 명확하게 표현했고, 이때야 비로소 혁명군이 지켜야 할 12개조 규율을 반포했다”며, “동학농민혁명의 혁명성을 가장 잘 드러낸 격문을 각지에 발송해 호남 일대 동학혁명군이 백산으로 집결했다”고 설명했다.

박 조사위원은 백산대회일을 주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념일 제정에 있어 역사적 고찰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고부봉기와 무장기포·백산대회를 단절하고 고부봉기는 민란으로 백산대회는 실체 불명 혹은 의미축소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기념일 제정 후보로) 다수 의견이 모였던 ‘전주성 점령’일과 ‘백산대회’일이 2004년 이후 자취를 감추었고, 오늘(18일)도 전주성 점령일과 고부봉기를 추천하지 않았고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삼례기포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해 언급하지도 않았다”며, “동학농민혁명 정신과 취지에 어긋난 절차와 진행 과정이 있다. 역사적 사건보다 지자체 유불리 판단에 따른 특정일을 추천하고 있다. 게다가 전라북도로만 한정해서 전국화에 역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17일 오후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동학농민혁명 법정기념일 선정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조광한 동학역사문화연구소장이 정읍시 황토현 전승일(5월 11일)을 발표했다. (뉴스한국)
정읍시, 황토현 전승일 5월 11일
조광한 동학역사문화연구소장은 발표에 앞서 홍보 영상을 화면에 띄웠다. ‘동학농민군은 황토현 전투 승리 이후 그 기세를 몰아 진격하였고 사람답게 살아보겠다 뛰어든 이들은 혁명의 불꽃을 피워냈다. 1894년 황토현, 그곳에 전봉준이 있었다. 반부패·반봉건·반외세의 기치를 내걸었던 역사의 혁명’이라는 문구가 공청회장을 울렸다.

조 소장은 “황토현 전승일 5월 11일(음력 4월 7일)은 전봉준 등 각 지역 동학농민군 부대가 하나가 되어 최초로 관군과 격돌한 조직적인 전투이며 동학농민군이 대승을 거둔 날”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날 승리로 혁명의 불길이 들불처럼 타올라 전국으로 확산했고 이후 장성의 황룡전투를 거친 뒤 전라감영의 심장부인 전주성을 점령했다”고 설명하며, “당대 석학 故(고) 김상기 박사의 발의와 민간단체 주도로 1963년 10월 3일 황토현 전승지에 최초의 상징 기념물을 건립했다”고 밝혔다.

17일 오후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동학농민혁명 법정기념일 선정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이상식 전남대학교 명예교수가 전주시 전주화약일(6월 11일)을 발표했다. (뉴스한국)
전주시, 전주화약일 6월 11일
이상식 전남대학교 명예교수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주는 전라도 수부였고 모든 싸움은 전주성을 차지해서 전주성을 차지해 역사적인 결정을 했다. 동학농민혁명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효시인데, 그 출발은 전봉준과 전라감사가 전주에서 화약을 체결해 농민 통치를 이룩하자는 약속을 한 날이다. 민주주의하면 풀뿌리 민주주의를 찾는데 바로 농민이 주인이 되어 이 나라를 간섭 없이 스스로 통치할 수 있는 날이 전주에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화약은 화목하게 지내자는 약속이라는 뜻이다. 동학농민군이 조선정부와 협의해 혁명과업 수용 결과를 도출했다는 게 이 명예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조선정부가 동학농민군의 존재를 공식 인정했고 청과 일본을 몰아내야 한다는 자주적 공감대를 형성해 민족적 단결을 이뤘다”며, “집강소는 관민통치 또는 농민통치의 실현이며 세계사적으로 유래가 없는 민주주의 시발적인 사건이자 한국의 자생적 민주주의라는 평가”라고 말했다. 집강소는 동학농민군이 전라도 지역에 설치한 자치 개혁 기구를 말한다.

17일 오후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동학농민혁명 법정기념일 선정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뉴스한국)
“고부봉기를 기념일 논의에서 빼면 전봉준은 수괴”…“고부봉기는 동학농민혁명의 시작”
공청회가 열린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 총 204석은 사전 등록으로 만원을 이뤘다. 공청회가 열리기 1시간 전부터 고창군·부안군·정읍시·전주시에서 온 시민과 유족들로 성황을 이뤘다. 공청회 시작 30분 전부터는 공청회 절차를 비판하며 고부봉기를 논의에서 제외한 데 반발하는 이들 서너명이 손팻말과 펼침막을 들고 고성을 지르는 소동을 벌였다. 이들이 펼침막을 들고 공청회 장으로 들어오려고 시도하자 관계자와 충돌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경찰이 출동한 후에야 상황은 일단락했다.

이들은 4명의 발표자가 발표를 끝낸 후 질의응답 시간에 고부봉기를 누락한 데 강한 불만을 표명했다. 이들 중 한 명은 “전봉준은 고부봉기를 처음 시작했는데, 기념일을 제정한다면서 고부봉기를 (동학농민혁명에서) 아예 뺐다. 고부봉기를 혁명에서 빼고 논의한다면 전봉준은 민란의 수괴가 된다. 1894년 3월 20일 무장기포의 시발점은 1893년 11월 사발통문이며, 이듬해 1월 11일 고부봉기로 전봉준은 혁명 지도자가 됐다”며 고부봉기의 역사적 의미를 물었다.

유바다 교수는 “고부봉기는 동학농민혁명 시작을 예비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평가한다. 오늘날 고부봉기를 들어 전봉준을 민란의 수괴라고 지칭하는 연구자는 아무도 없다. 그 이전의 사발통문은 물론 전봉준을 중심으로 이뤄진 각종 집회도 동학농민혁명의 예비적 단계로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다만 학계 전체가 동학농민혁명의 ‘전국적인’ 시작을 무장포고문 발표일로 본다”고 말했다.

박대길 조사위원은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제정에 있어 답답한 건 고부봉기와 무장기포를 단절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고부에서 실패해 오갈 데 없는 전봉준이 무장에 가서 다시 봉기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고부봉기를 일으킨 전봉준은 실패자이고 민란의 수괴가 된다”며, “전봉준은 세상을 변혁하려 동학에 가입했고 혁명지도자들과 만나 혁명을 구상하다 결정적으로 터뜨린 곳이 고부였고 이후 사발통문이 나오고 무장에 모여 결의를 했으니 어떻게 고부봉기 없이 무장기포가 나오겠나. 동학농민명예회복법도 교과서도 고부부터 무장까지 연속선에서 보되 백산대회일을 집중해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광한 소장 역시 “고부봉기가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이다. 고부봉기 때의 전봉준과 무장기포 때의 전봉준, 백산대회 때의 전봉준이 다를 리 없다. 고부봉기가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이라는 점은 팩트”라면서도 “‘시작일’로만 한다면 정읍에서 고부봉기를 기념일로 주장했겠지만 이는 기념일을 제정하는 여러 기준 중 하나였기에 상징성과 지역참여도를 고려한 후 고부봉기를 주장하는 분들과 상의해 황토현 전승일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상식 명예교수는 “2004년 2월 동학농민명예회복법이 통과하면서 동학‘난’이 아니라 동학농민‘혁명’으로 명예회복했다. 고부에서 시작했기에 고부봉기는 당연히 명예회복을 했고, 동학농민혁명 전 과정의 하나라고 봐야 한다. 이를 반대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청회 도중 발표자에게 반발하거나 질문하는 청중을 고성으로 비판하는 경우 있긴 했지만 공청회는 예정한 3시간을 꽉 채운 후 오후 5시께 종료했다. 이경훈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정책관은 전문가들로 꾸린 기념일선정위원회가 학술자료와 이날 공청히 결과를 토대로 신중하고 객관적으로 공정한 절차를 거쳐 법정기념일을 최종 결정한다고 밝혔다. 안병욱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은 “10년을 넘긴 기념일 선정 논란이 해소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슬 기자  [dew@newshank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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