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대물림’ 참혹한 고통 속에 사는 ‘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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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대물림’ 참혹한 고통 속에 사는 ‘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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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5-30 00:25:11 | 수정 : 2013-09-04 09: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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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동안 법에 호소했지만 번번이 퇴짜…공소시효 1달 남아 ‘절박’
성폭행 피해로 낳은 딸(안 씨, 왼쪽)이 자신을 성폭행한 남자의 아들에 의해 또다시 성폭행당한 사실을 알고 7년째 법적 투쟁 중인 장 씨(오른쪽). ⓒ뉴스한국
성폭행을 당해 어쩔 수 없이 낳게 된 딸이 자신을 성폭행한 남자의 아들에 의해 성폭행 당하는 끔찍한 일이 장 모(57) 씨에게 일어난 것은 7년 전이다. 장 씨는 딸 안 모(35) 씨가 당한 피해를 법에 호소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증거가 불충분하다거나 혐의가 없다는 이유로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안 씨의 성폭행 정황을 입증하는 목격자가 있었지만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모녀를 만난 곳은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서울 삼청동 주택가의 한 허름한 집. 취재진을 마중 나온 안 씨의 뒤를 따라 가파른 오르막과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지났다. 바로 전날 부산에서 다섯 번째 고소장을 제출하며 조서를 작성하느라 새벽에야 서울에 도착했다는 모녀는 눈을 붙일 틈도 없이 취재진을 맞았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장 씨는 “이 일 때문에 부산에 왔다 갔다 하느라 집을 돌볼 틈이 없었다”고 머쓱해 한다. 세간도 없이 휑한 마루에 앉기 무섭게 장 씨는 이런저런 서류를 꺼내놓았다. 안 씨가 그 옆에 조용히 앉았다. 안 씨는 고개 한 번 들지 않고 바닥만 내려다 봤다. 장 씨가 안 씨의 성폭행 당한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자 안 씨는 괴로워하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고 몸을 웅크렸다. 딸의 그런 모습에 장 씨 역시 쓴 한숨을 내쉬었다.
장 씨가 지난 7년 동안 딸을 성폭행한 이복오빠 B에게 죄를 묻기 위해 수차례 고소했지만 기소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장 씨는 지난 5월 27일 공소시효를 한 달 앞두고 다섯번째 고소장을 제출했다. ⓒ뉴스한국
장 씨는 자신의 상처부터 끄집어내며 슬픈 이야기를 시작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던 장 씨가 성폭행을 당한 때는 21살이던 지난 1974년이다. 우연히 A라는 남자를 알게 됐는데 그는 첫째 부인에 둘째 부인까지 두고 있었던 남자였다. 알고 보니 A는 돈을 노리고 장 씨에게 접근했다. 유난히 순박하고 정이 많았던 장 씨는 치근덕거리는 A를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했다. 어느 날 A는 약을 탄 머루주를 장 씨에게 마시게 한 후 성폭행했다. 이후 장 씨에게 도장을 빼앗아 장 씨의 부동산을 가로챘다.

장 씨는 당시 입은 상처 때문에 죽고 싶어 한강을 여러 차례 찾았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분했지만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참혹한 고통 속에서 시간을 보내다 뒤늦게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A의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끔찍해 낙태하려 했지만 그마저도 맘처럼 되지 않았다. 장 씨는 그렇게 21살에 딸을 낳았고, 딸이 2살 되던 해 자신의 삶을 철저하게 짓밟은 A가 끔찍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됐다.

상처를 단 한순간도 잊을 수는 없었지만 장 씨는 딸과 함께 일상과 고통을 넘나들며 삶을 이어갔다. 딸이 예쁘게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삶의 의지를 다지고 또 다졌다. 다행히 친정의 도움을 받아 형편은 힘들지 않았다. 당시 장 씨는 A의 둘째 부인과 간간이 왕래했는데, 어느 날 그의 아들 즉 안 씨의 이복오빠가 안 씨에게 부산으로 내려오라는 연락을 한다.

그간 자주 만나지 않았지만 안 씨는 이복오빠인 만큼 큰 거부감 없이 부산으로 내려갔다. 막상 가보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를 맞은 사람은 큰 오빠가 아닌 둘째 이복오빠 B 씨였다. B는 안 씨에게 약이 든 술을 먹여 성폭행을 저질렀다.

안 씨가 정신을 차려보니 B의 방이었고, 옷가지가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이후 안 씨는 두 차례나 더 성폭행을 당했지만 이를 주변에 알릴 수 없었다. 성폭행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 채취가 안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대학에서 연극을 배우며 주니어 잡지 모델로 활동할 정도로 생기발랄하던 안 씨는 2003년 6월의 참혹한 악몽으로 정신병을 얻게 됐다.

정신분열증 판정을 받고 정신병원에 입원한 안 씨를 보며 장 씨는 억장이 무너졌다. 딸을 유린한 B를 이듬해인 2004년 2월 부산 연산경찰서(현 연제경찰서)에 고발했지만 상황은 점점 꼬이기 시작했다.

경찰이 보호자인 장 씨가 없는 사이에 정신병원에 입원한 안 씨와 B를 대질 조사한 것이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했던 안 씨는 당시 조사에서 “서로 좋아했다”는 이상한 말을 쏟아냈고, B는 상호 성관계에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대학시절 수영을 즐기며 연극을 배웠던 안 씨는 얼굴이 예뻐 주니어 잡지 모델로 활동한 적도 있다. 이복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정신병을 얻은 안 씨는 약 부작용에 시달리느라 과거의 예쁜 모습을 잃었다. 안 씨가 20대 당시 찍어 둔 자신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뉴스한국
이후 장 씨의 싸움은 7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검찰은 증거가 불충분하다거나 혐의가 없다며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장 씨는 “제발 기소라도 해달라”며 검찰에 매달렸지만 검찰은 “기소했다가 재판부가 무죄 판결을 내리면 어떻게 하느냐”며 보다 확실한 증거를 요구했다. 장 씨는 안 씨가 세 번째 성폭행을 당할 때 목격자를 어렵게 찾아 증언을 받아냈지만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 27일 5번째 고소장을 제출해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은 있는 장 씨는 “죽음으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약봉지를 들고 다닌다. 만약 이 사건의 가해자가 처벌받지 못한다면 그 자리에서 약을 먹고 죽을 작정이다”고 말했다. 안 씨는 이복오빠이긴 하지만 피가 섞인 가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모멸감과 치가 떨리는 배신감 때문에 분노하고 좌절했다.

그 사건 이후 어머니인 장 씨 옆을 단 한 순간도 떠나지 못한다는 안 씨는 장 씨가 화장실만 가더라도 짐을 다 챙겨서 쫓아다닌다고 한다. 죽을 때까지 약을 먹어야 하는 약의 후유증은 심각하다. 바짝 마른 얼굴과 몸에 입술과 배만 임신한 것처럼 부풀었다. 잡지 모델로 활동하던 당시의 사진과 비교하면 동일인이라고 믿어질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 모습이었다.

딸의 삶을 짓밟은 파렴치한의 죄를 묻기 위해 장 씨가 안 씨를 데리고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지낸 세월이 벌써 7년 이다. 강원도에 마련한 2층 집을 처분하고 안 씨의 결혼자금을 털어 넣어 변호사 비용을 마련했다. 1억 5천만 원이 넘는 돈이 세월과 함께 사라졌다. 시간과 돈을 쏟아 붓고도 모녀는 칠흑 같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다음달 23일이면 공소시효가 만료된다.


이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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