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前 조선 구한 리더십을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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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前 조선 구한 리더십을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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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5-01 07:41:00 | 수정 : 2012-05-08 09: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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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특집①>궂은 일은 내가 먼저…목숨 다한 솔선수범
"나라, 부하, 백성 향한 지극한 애심(愛心), 소통의 대가"
충무공 이순신 표준 영정. 1953년 제작됐으며 여러 영정 중 가장 대표적이다. 이순신 장군의 생전 모습은 정확치 않다. 이 그림은 깊은 인품의 소유자로 묘사된 역사속 한줄의 이미지를 참고해 완성됐다. (현충사 제공)
대통령 선거 직전 드러나는 임기 말 측근 비리는 올해도 어김 없다. 수사 기관에 조사 받으러 가는 측근들의 뒷모습은 “정치판이 그럼 그렇지”라는 씁쓸함과 환멸감을 준다. 부패 관습에 길들여진 썩은 정신의 말썽 꾸러기 공직자는 퇴출 1순위다. 이득을 챙기는데 혈안이 된 이들은 국가에 해악이다.

476년 전 조선 시대에 출생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오늘날 부패 공직자들과 궤(軌)를 달리했다. 그는 장수로서 용맹했고 완벽한 인격을 갖춘 ‘성웅’(聖雄)이었다. 부하를 끔찍이 사랑했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원칙과 소신을 지켰다. 뇌물을 멀리하고 늘 솔선수범 정신으로 부하를 이끌며 희생했다.

충무공을 발탁한 조선 중기의 문신인 류성룡은 임진왜란 때 경험한 사실을 적은 ‘징비록’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이순신은 뛰어난 재주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운수가 없어 갖고 있던 능력의 100분의1도 다 쓰지 못하고 죽었다. 참으로 안타깝고 아깝다” 이순신 장군의 리더로서 됨됨이는 오늘날 부패가 범람하는 세상에 한줄기 빛이 되고 있다.

궂은 일은 내가 먼저…죽음 각오한 솔선수범
위험한 전쟁터 앞에서 ‘이순신식 돌파구'는 “돌격 앞으로”가 아니라 “나를 따르라”였다. 위기가 오면 책임 떠넘기기 급급한 오늘날 무책임한 리더의 전형적 모습과 달랐다. 명량해전(鳴梁海戰)에서 그의 솔선수범 정신은 빛났다. 수적으로 압도적 열세를 보인 조선군은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전쟁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 와중에 충무공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굳건한 신념이 있었다. 그는 “신에겐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신의 몸이 살아 있는 한 적은 감히 이 바다를 넘보지 못할 것입니다”는 확신에 찬 어조로 선군을 설득했다.

부하들에겐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니 목숨과 바꿔서라도 이 조국을 지키고 싶은자, 나를 따르라”라는 ‘必死則生, 必生則死(필사즉생 필생즉사)’ 명언을 남겼다. 벼랑 끝 위기 속에도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명도 두렵게 할수 있다”며 부하들에게 강한 신념을 심어주었다.

전쟁에서 충무공은 직접 배를 몰고 최전선에서 수군을 진두지휘 했다. 화살이 소낙비 처럼 퍼붓는 악조건도 의지를 꺾지 못했다. 죽음을 무릅쓴 충무공의 살신성인에 감복한 병사들은 그와 똑같은 마음을 품고 전쟁에 임했다. 그 결과, 13척의 아군으로 133척의 왜군을 물리치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승전보를 올렸다.
13척으로 133척의 왜적을 무찌른 명량해전 그림. 이 해전은 세계해전사의 최대 미스테리로 손꼽힌다. (현충사 제공)


승리의 원인에 대해 37년간 충무공을 연구한 김종대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이순신은 가장 어려운 일과 가장 어려운 전쟁은 제일 먼저 나섰다. 이것은 어느 경우에도 예외가 없었다”면서 “모두가 두려워할 때 제일 먼저 나선 행동은 다른 부하들에게 용기를 전염시키고 부하들을 하나로 뭉쳐서 위기를 헤쳐 나간 원동력이 됐다”고 설명했다.

솔선수범형 정신의 중심에는 “나라없이 국민도 없다”는 충심이 저변에 깔려있다. 충무공의 인생관은 투철한 애국심으로 점철 돼 있었다. 이순신은 “대장부로 이 세상에 태어나 나라에 쓰이면 죽기로서 최선을 다할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들에서 농사짓는 것으로 충분하다. 권세에 한때의 영화를 누리는 것은 내가 가장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노량해전에서는 적진이 쏜 화살이 가슴에 맞아 쓰러지면서도 “지금 싸움이 한층 급하니 내가 죽었단 말을 내지 마라”며 자신의 생명은 국가 수호를 위해 뒤로 했다. 장렬한 최후 속에도 살아 있는 나라 향한 일념은 이기주의에 물든 일부 고위 공직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부하를 한몸처럼 여긴, 남다른 부하사랑
이순신 장군은 부하들을 지극정성으로 아꼈고 동고동락 했다. 죽은 부하들까지 정성 다해 돌보았다.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은 평소 아꼈던 '녹도만호 정운'이 전쟁터에서 사망했을 때 시체를 부둥켜 안고 슬퍼하는 대목이 나온다. 부하들의 시체를 거두어 고향에 묻히도록 장지를 마련해 주었다.

병사들이 전쟁을 치르고 심신이 지친 상태로 돌아오면 다음 전쟁을 잘 치를수 있도록 잠을 재웠다. 대신 자신은 내일의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직접 활을 닦고 군비를 정열 했다. 밤중에 보초를 서다가 졸고 있는 병사 대신 새벽까지 보초 서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공(功)을 세운 부하에게는 반드시 공을 다 돌려주었다. 이순신은 부하의 공을 가로챈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이런 지극한 부하사랑은 전투력을 극대화 시켰다.

김종대 재판관은 “이순신은 자기 부하를 자기와 한 몸처럼 생각했다. 거기서 신뢰가 오고 소통이 되고 그 힘이 이순신을 향해 모아졌다”고 말했다.
현충사 내 전시실에 이순신 장군이 벌인 해전의 명칭이 표기된 고(古)지도. (뉴스한국)

이순신은 최말단 부하도 무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자재로 소통했다. 조선시대는 철저한 신분사회였다. 게다가 군대 구성원은 어부, 농부, 종 등 하층민들의 집합체였다. 때문에 장수와 부하들 간에 커다란 소통의 장벽이 있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그 벽을 허물었다. 여느 졸병의 의견이라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 결과 이순신은 최말단 병사의 밑바닥 정서까지 이해할 수 있었다.

또 자신이 배운 모든 것을 부하들에게 열과 성을 다해 가르쳤다. ‘이순신 행록’에 따르면 이순신은 밤낮으로 전투를 연구하고 새벽에 부하들에게 병법과 전술을 가르쳤다. 또 활 쏘는 방법을 직접 지도했다. 이러한 지극정성은 상호 신뢰를 두텁게 했다.

임원빈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장은 “조선시대가 차별사회임에도 이순신은 부하 장수 참모들하고 소통이 진짜 잘됐다. 나라와 공동체를 생각하는 고결한 인격과 언행이 민간군의 전투력을 극대화했다”며 “이렇게 보면 충무공의 고결한 인격이 조선을 구했다는 표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겸손한 리더, 백성들을 감동시키다.
이순신은 명량해전을 대승하고도 “참으로 천행이었다”며 겸손함을 유지했다. 오늘날 함대사령관(소장급)에 해당되는 삼도수군통제사라는 높은 신분에도 아랑곳 없이 종과 함께 지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1597년 6월 1일 작성된 난중일기에는 이순신이 백의종군 도중에도 지인의 종의 집에서 밤을 지낸 대목이 기록됐다.

“날이 저물어 단성땅과 진주/땅의 경계에 있는 박호원의 농사종의 집에 들어가니 주인이 반갑게 대하기는 하나 자야할 곳이 좋지 못해서 간신히 밤을 지냈다. 밤새도록 비가 내렸다”

지휘에 걸맞는 저택에 숙박할 수 있었지만 특권 의식을 버리고 낮아졌다. 종이 살던 집은 비가 줄줄 샐 정도로 매우 열악했다. 하지만 이순신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종의 가난함을 걱정했다.

옥포해전을 끝낸후 임금에게 보내는 글에는 백성을 향한 애심이 담겨있다. “신이 이번 싸움 길에 연안을 두루 살펴 보니 지나치는 산골마다 피난민들이 모여 신의 배를 보고 울부짖었습니다. 늙은이와 아이가 짐을 지고 서로 부축하며 흐느껴 울고 부르짖었습니다. 비참하고 불쌍하여 배에 싣고 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숫자가 너무 많을 뿐 아니라 싸우는 배에 사람을 가득 태우면 움직이지 못할 것이므로 태우지 못했습니다”

이순신이 백성들을 아낀 만큼 백성들도 이순신을 의지했다. 7년의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백성들은 식량이 바닥나 인육을 먹을 만큼 배고픔이 극에 달했다. 그 와중에도 백성들은 군대를 돕겠다며 군수물자 조달을 자청했다. 위급한 전쟁을 치르기 위한 신속한 물자 공급은 나라 살리는 밑거름이 됐다. 남을 위해 전심을 다한 대가가 큰 결과로 돌아온 것이다.
조선의 병사들과 왜적들이 함선에서 해전을 벌일 당시 상황을 가상해 만든 인형. (뉴스한국)

이순신 리더십은 선천성 보다 시련과 노력, 연구와 훈련을 거듭한 결정체로 볼수 있다. 모함과 백의 종군,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늘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 했다. 이러한 리더십은 500여년이 지난 현 세대에도 귀감이 되고 있다.

이순신에게 참패를 당한 일본 사람들 조차 이순신을 존경하고 본받으려고 노력했다. 러일 전쟁 때 러시아의 발탁함대를 거의 전멸시킨 일본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해군사령관 도고 헤이하치로는 “나를 넬슨(영국의 해군제독)에게 비하는 것은 가하나 이순신에게 비하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곤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며 미국 해군 역사상 최초로 원수가 된 니미츠 제독도 이순신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해군제독”이라고 치켜 세웠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한민국의 영웅 이순신. 500여년전 당대를 초월한 이순신을 빼닮은 20세기의 이순신의 출현이 그립고 또 보고 싶다.


정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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