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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20조’, 법정에서 죽다

등록 2013-05-27 00:01:41 | 수정 2013-06-01 18:43:00

대구지법 안동지원 막말판사,
“정통교회에서는 이단이라고 그러지 않나요…이혼하면 되겠네 그럼”
전문가, “해프닝으로 끝나서는 안 돼…종교차별 예방 ‘법관 매뉴얼’ 만들고 교육해야”

헌법과 법률을 기초로 심리하고 판결을 해야 하는 판사가 법정에서 특정한 신학적 입장을 잣대로 사건 당사자의 종교를 ‘정통교회’와 ‘이단교회’로 구분하는 발언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독립적 헌법기관인 법관이 헌법 20조에 따라 국민 개개인의 ‘종교의 자유’를 보호하기는커녕 판사라는 권위를 남용해 국민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점에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 이 모(44) 판사는 형사사건 심리 과정에서 피해자의 종교를 언급하며 ‘정통 교회에서는 이단이라고 그러지 않나’고 질문하고, 사실 근거도 없이 피해자 종교의 교주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뿐 아니라 피해자의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피고인의 행위를 ‘신념’이자 ‘종교의 자유’라고 정당화하고 “종교가 다르면 가정을 지키기 어렵다”는 막말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공무원이 신앙생활 이유로 아내 납치해 폭행·감금…강제 개종 의뢰
사문서 위조해 아내 돈 빼돌리고, 이혼재판 이기려고 증인진술서 위조

2012년 11월 1일 오후 안동지원에서 이 판사의 심리로 공무원 김진영(가명·43세) 씨에 관한 사문서위조와 동행사죄 재판이 열렸다.

평소 종교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김 씨는 2008년경, 경북과학대 조교인 아내 조 모(42) 씨가 신앙생활을 시작하자 이혼을 운운하며 반대했다. 조 씨는 학창시절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1996년에 결혼한 후 직장생활과 육아로 종교에서 멀어졌다가 2007년 5월 주변의 권유를 받아 집 근처에 있는 H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자 김 씨는 조 씨가 예배에 참석하는 것 자체가 가정의 행복을 깨뜨리는 것이고, 신앙생활을 지속하는 것은 자신의 의사에 대항하는 것이라며 함께 살고 싶다면 종교를 버리라고 종용했다.

김 씨는 인터넷에서 H교회에 대한 악성루머를 접한 후 조 씨에게 적개심과 증오심을 표출했다. ‘이단’ ‘사이비’라고 모욕하고 심한 욕설을 하거나 뺨을 때리며 폭행했다. 급기야 김 씨는 강제로 조 씨의 신앙을 꺾어야겠다고 결심한 뒤 치밀한 준비에 착수했다.

2011년 4월 김 씨는 경기도 안산의 한 교회가 운영하는 사설 이단상담소를 찾았다. 상담소로부터 ‘두 달 정도 교육을 받으면 부인의 종교를 바꿀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개종 착수금 50만 원을 입금하는 한편 감금에 사용할 원룸을 계약했다. 당시 김 씨는 개종에 실패할 경우 이혼하기로 마음먹고 결혼 후 마련한 유일한 재산인 아파트를 매형 명의로 허위 근저당권을 설정해 두었다.

김 씨는 곧바로 조 씨의 친정가족을 설득해 강제 개종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5월 9일 대학교로 출근하려던 조 씨를 거짓말로 차에 태워 대구에서 안산까지 납치했다. 김 씨는 상담소와 원룸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폭력적으로 개종을 요구했다. 조 씨는 종교를 바꿀 때까지 감금상태에서 폭행당할 것을 직감하고, 도망갈 기회를 엿보다 극적으로 탈출해 지인의 집으로 피신했다. 조 씨는 충격으로 열흘간 하혈과 구토에 시달렸다.

조 씨가 가까스로 탈출하자 김 씨는 버젓이 파출소를 찾아 조 씨가 집을 나갔다며 가출 신고를 했다. 납치 사건 4일 만인 12일에는 조 씨 명의의 농협 통장 출금청구서를 위조하고, 신원을 알 수 없는 여성을 조 씨로 속여 700만 원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했다. 경찰 조사에서는 “조 씨가 수중에 돈이 없어야 빨리 집에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개종에 실패 후 김 씨는 계획대로 그해 6월 10일 법원에 이혼 소장을 제출했다. 김 씨는 H교회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비방하고 조 씨가 종교에 비정상적으로 심취했다고 몰아가기 위해 증인진술서를 위조해 법정에 제출했다.

김 씨는 고인인 모친의 50년 지기 친구로부터 ‘고인은 평소 며느리가 이단종교에 다니며 고인의 아들과 불화가 생길까 노심초사하였고 잦은 교인들의 방문과 며느리의 처신으로 신경이 예민해지는 등 악영향을 받다가 사망하였고, 나도 조 씨에게 잘못된 종교에 빠져 가정의 화목을 깨지 말라고 수차례 설득한 적이 있다’는 취지의 진술서를 받아 이혼 재판부에 제출했지만 이것은 김 씨가 컴퓨터로 작성·출력한 뒤 모친 친구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써 넣어 위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사문서위조와 동행사죄에 관해 김 씨에게 벌금 70만 원의 약식명령을 청구하였으나 안동지원 약식 담당 판사는 이를 정식 재판에 회부했다. 정식재판에서 이 판사는 김 씨에 대한 벌금을 50만 원으로 감경했다. 또한 김 씨가 출금청구서를 위조해 700만 원을 인출한 것에 대해 검찰이 사기죄로 50만 원의 약식명령을 청구했지만, 약식재판부로 자리를 옮긴 이 판사는 김 씨가 사문서위조와 동행사죄의 벌금을 받은 것을 참작해 판단해달라는 취지로 정식재판을 청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월 1~2일 조 씨가 안동지원 앞에서 1인 피켓시위와 인식전환 캠페인을 열어 이 판사가 종교 편향으로 김 씨를 비호하고 있다고 성토하면서 사건의 실상이 드러났다. 조 씨는 “이 판사가 신성한 법정에서 정통교회와 이단교회를 나누고, 저의 종교를 이단이라고 해 저에게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주었다”며 호소했고, “판사가 종교적 편향으로 범죄자를 비호해 벌금을 깎아주고 사기죄를 참작해 달라며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며 분개했다.

기울어진 ‘법의 저울’, 재판 중 피고인 주장에 동조해 피해자 모독한 판사
문제가 된 2012년 11월 1일 공판에서 김 씨는 H교회가 ‘이단’ ‘사이비’라고 거듭 주장하며 이 때문에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으니 선처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이 판사는 김 씨가 조 씨를 상대로 저지른 폭력 행위 등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김 씨의 주장을 양형에 반영하겠다는 취지로 말하며 국선변호인을 선임해 법률적인 도움을 받으라고 조언했다. 이 판사는 “교주를 보니까 사회적으로 물의를 많이 일으킨 것 같더라”며 김 씨의 주장에 동조했다.

방청석에서 재판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피해자 조 씨는 김 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피해자 진술권을 요구했다. 조 씨는 김 씨가 자신과 자녀들의 종교의 자유를 짓밟고 인권을 침해했다고 반박했다. 또 김 씨가 ‘이단’ ‘사이비’라는 모욕적인 표현을 사용해 자신의 종교를 비방하며 폭력을 가한 것도 모자라 위조한 진술서를 법정에 제출해 재판부를 우롱한 만큼 엄중한 처벌을 요구했다. 당시 조 씨는 자신의 종교를 비방하는 김 씨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상당량의 자료를 재판부에 이미 제출한 상태였다.

진술이 끝나자 이 판사는 “지금도 H교회 다니세요? H교회가 정통 교회에서는 이단이라고 그러지 않나요?”라고 물으며 “종교가 다르면 가정을 지키기 어렵잖아요”라고 말했다.

조 씨가 “종교가 다르다고 가정을 지킬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종교가 문제가 아니라 피고인이 아내의 종교를 인정하지 않고 강제개종을 시도한 것이 문제다”고 말하자 이 판사는 “본인의 인권을 모독하는 사람과 같이 살려고 하는 이유가 뭐예요”라고 되물었다. 조 씨와 김 씨가 이혼 소송 중에 있다고 말하자 판사는 “이혼하면 되겠네, 그럼”이라고 말했다.

판사는 또 조 씨에게 “본인의 신념이 중요한 만큼 남편의 신념도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라며 납치·강제개종 등 폭력적 방법으로 신앙을 짓밟은 김 씨의 범죄행위를 존중 받아야 할 남편의 ‘신념’이자 ‘종교의 자유’라고 말했다. 또 김 씨가 사문서를 위조해 조 씨의 통장에서 돈을 인출한 행위에 대해서는 “그게 용납할 수 없는 문제냐”고 되물었다.

취재진은 지난 2일 대구지법 안동지원 이상균 지원장의 취재 허가를 받아 공판 당시의 녹음 내용을 확인하고 판사와 피고인·피해자의 법정 대화록을 확보했다. 대화록을 검토한 5명의 법학자와 사회학자는 심리가 전반적으로 피고인에게 치우쳤다고 지적하는 한편 종교차별이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판사의 발언 중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네 가지 문제점에 대한 진단과 대안에 대해 들어봤다.

판사, “교주 보니 물의 일으킨 것 같더라”…전문가, “피고인의 일방적인 주장에 호응한 것은 ‘불공정’”
가장 먼저 지적한 문제점은 이 판사가 H교회에 대해 “교주를 보니까 사회적으로 물의를 많이 일으킨 것 같더라”고 말한 대목이다.

이 판사에게 해당 발언을 뒷받침하는 팩트를 요구했지만 그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김 씨가 낸 자료와 가사 1심 기록을 보고 이야기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김 씨가 제출한 자료에는 판사가 언급한 ‘사회적 물의’를 입증할 만한 근거 자료는 없었으며 김 씨와 조 씨의 이혼에 대한 가사 1심 판결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민주주의 법학 연구회장을 맡고 있는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판사의 발언에 대해 “불공정성을 내포한 발언으로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형법 53조(작량감경)에 따르면 범죄의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을 때 법관이 재량으로 형을 감경할 수 있는데, 판사가 ‘양형’을 언급하며 이 같이 말한 것은 조 씨 종교를 범죄의 동기라고 주장한 김 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형량을 감경하는 사유로 볼 수 있음을 내비쳤다는 것이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같더라’는 표현은 판사의 판단이다. ‘내가 봐도 그런 것 같다’는 것으로 판사가 피고인 쪽에 우호적으로 말한 것 아닌가. 중립적 심판자인 판사로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이슬 기자 dew@newshanku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