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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 ‘운’을 바탕으로 ‘성실’해야 한다"

등록 2007-02-23 16:39:21 | 수정 2011-06-09 10:58:51

방송작가가 말하는 방송작가 ‘이정란’

작가 경력 10년 동안 33개 프로그램에서 2000여 편의 대본을 집필하고, 2006년 여성가족부 장관상을 수상한 바 있는 방송작가 이정란(李貞蘭·32) 씨는 좋은 사람과 어울리는 자리를 좋아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는 30대 초반 작가다.

현재 (사)한국방송작가협회 정회원으로 등록되어 있고, 위민넷에서 방송작가 분야의 멘토로 활동한 그는 “한국 사회에서 여자가, 특히 아이엄마가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이 더 악착같이 성공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한다.언뜻 납득하기 어렵겠지만 현재 방송작가로 일하는 그는 경희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점수에 맞춰 적성에도 없는 학과에 지원했지만 불어불문학과에 가게 된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할 만큼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학 1학년 무렵 낯선 불문학과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원하지도 않던 학과에 지원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적성에 맞지 않아 겉돌았다. 대학생활에 의미를 찾지 못해 휴학할까도 생각하고 있을 때 대학 방송국에서 지원자를 뽑았다. 그래서 아주 흔쾌히 대학 방송국에 들어갔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 당시 전국에 방송국이 있는 대학은 두 군데 밖에 없었다. 일주일에 라디오 3개, TV 2개를 하면서 학교를 다닌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 때는 방송에 미쳐 있었다. 방송국에서 TV & 라디오 PD로 활동하면서 대학생활에 흥미를 느꼈다. 큰 LP판을 들고 강의에 쫓겨 뛰어다니면서도 참 행복했다.”

“그렇다고 불어불문학과에 들어간 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 방송작가는 경험이 풍부하면 할수록 좋은 것이다. 학과덕분에 프랑스에 관한 글을 작성하거나 불어 발음이 필요할 때는 동료들이 꼭 나를 찾는다. 그럴 땐 뿌듯하고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무슨 일이든지 나쁜 상황은 없다. 내가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뿐이다.”짧은 기간 동안 2000여 편의 대본을 집필할 수 있었던 아이디어의 근원을 어린 시절 풍부한 경험을 손꼽는 이정란 작가다. 같은 또래 아이들이 학원을 다니며 지식을 쌓고 있을 때 그는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인 추억을 쌓으며 샘의 깊이를 더해갔다.

“어린 시절 별명이 ‘깜씨’였다. 집이 명지대학교 용인캠퍼스 뒤쪽이었는데, 시골이라서 매일 노는 게 일이다보니 햇볕에 많이 그을었기 때문이다. 천방지축이었지만 대중없는 말괄량이는 아니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바른생활 사나이’였다. 더군다나 동네가 좁아 누구네 집 자식인지 금방 알기 때문에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다.”

‘꼬마 깜씨’ 이정란은 그랬다. 많은 끼를 가지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기대와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억제된 삶을 사는 아이. 일탈행동은 생각도 하지 못하는 아이. 하지만 기발한 생각을 많이 하는 아이였다. 그러나 성인이 된 방송작가 ‘이정란’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항상 가던 길로 가지 않고 어느 날은 이 길로, 또 어느 날은 저 길로 가보면서 새로운 풍경을 발견하고 기뻐한다. “나는 지금도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무엇이든지 호기심을 가지고 도전하면 뜻하지 않는 지식과 정보를 쌓게 된다”누구나 그렇지만 성공하려면 그에 맞는 운이 따라주어야 한다. 하지만 100% 행운만 따른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MBC <생방송 피자의 아침>, SBS <코리아 GO GO GO>, KBS <퀴즈 대한민국>, KBS KOREA <2003 경주세계문화엑스포>, EBS <장학퀴즈> 등 각 방송사를 넘나들며 실력을 입증한 바 있는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성실’이다.

“대학교 4학년 때 아주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실제로 방송국에 나가 있는 선배들이 많아서 후배들을 알게 모르게 도와주고 있었다. 어느 날, 작가를 구한다는 전화가 왔고 빼앗기기 싫어서 냉큼 하겠다고 말했다. 방송 3사가 아닌 지역방송이었다. 조금은 실망했지만 ‘이게 어디야’라고 감사했다.”

“열악한 상황이라서 모든 잡일을 다 해야 했다. 물론 많은 일을 배울 수는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안주하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10개월쯤 지나 MBC에서 일하는 동기에게 한탄을 했더니 메인작가를 소개시켜줬다.”

“근성을 보려고 했는지 <영화제 기획안>을 정리해 오라고 했다. 사실 내가 할 일은 아니었지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이걸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위에 아는 분을 수소문해 도움을 받아 작가에게 넘겼다. 선배가 ‘야! 내일부터 나랑 일하자’고 말했고, 그 때 시작한 것이 다.”

장학퀴즈 서브작가를 하던 중, 우연히 긁적인 퀴즈가 PD 마음에 들었고, 그 때부터 메인작가로 발탁되었다. 그가 현재의 위치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상황’에 딱 들어맞는 행운과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던 ‘성실함’이다.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졸업한 대선배들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했던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사람 이정란 작가. 그러나 그는 제일 중요한 덕목이 ‘성실’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오늘의 방송작가 이정란을 만든 중심축이라는 것이다. 성실한 사람 이정란. 그는 언제나 도태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한다.
방송 작가를 지망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겉모습만 보고 함부로 덤벼들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이 선망하는 ‘성공한 방송작가’의 화려한 겉모습 뒤에는 열정이 없다면 견뎌내기 힘든 생활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정보가 없다. 있는 정보도 이론적인 것뿐, 정작 필요한 리얼 스토리는 없다. 방송작가하면 사람들은 모두 TV에 비춰지는 화려한 이미지만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방송 작가는 책상에 곱게 앉아 글만 쓰는 게 아니다. 메인 작가가 되기 전의 작가는 그저 잡일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서류 카피에서부터 섭외 등 별별 일을 다 한다.”

“페이퍼를 운영하는 것은 작가생활 10년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방송작가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시작했다. 그리고 5월에는 <방송작가가 말하는 방송작가>라는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이 책은 현직 방송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방송 작가의 삶을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교양, 드라마, 다큐, 라디오(시사, 음악, 전문음악, 스포츠, 번역, DMB) 작가들이 공저한 이 책은 실제 방송작가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많은 사람이 방송작가의 앞모습뿐 아니라 뒷모습, 옆모습까지 정확히 알게 되는 날까지 페이퍼를 운영할 것이다. 지망생들을 위해 작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것이다. 멘토링이든, 위민넷이든, 강의든, 홈피든 방송작가를 알리는 일을 계속 할 것이다”고 말하는 방송작가 이정란. 그의 야무진 활동을 앞으로 더욱 기대해 본다.



안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