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만연한 영화계, 피해자 고립시키고 사건 은폐·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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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만연한 영화계, 피해자 고립시키고 사건 은폐·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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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19 21:09:03 | 수정 : 2017-05-30 14: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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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 감독, "침묵하지 못하게 하는 시스템 만들어야"
여배우의 신체 일부를 카메라로 지나치게 확대해 남자 감독·제작진이 둘러보며 희롱하고, 합의하지 않았음에도 여배우에게 남배우와 선정적인 장면을 연기하라고 요구하고, 가수를 하려면 몸이 예쁜지 봐야 한다며 19살 소녀에게 누드 촬영을 강요하고, 연예인 지망생 청소년을 성폭행하는 게 오늘 대한민국 연예계의 현실이다. 진선미·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한국여성민우회 등이 주최한 '#STOP 연예계 내 성폭력' 성평등 연속토론회가 1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참가자들은 특수한 공간인 연예계를 공적기구가 수시로 들여다보고, 성폭력 피해를 예방하는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10여 년 전 제작진으로 영화계에 종사하다 4년 전 김하늘·정우성 주연의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로 감독이 된 이윤정 감독은 영화계에서 겪거나 목격한 성폭력 피해가 수없이 많았다고 지적하며 그 원인 중 하나로 조직의 특성을 꼽았다. 회사·학교·병원 등은 조직과 체계를 갖추고 있어 성평등 인식을 반영한 규칙을 마련해 대처하지만 영화계는 각계 프리랜서 개개인이 모여 일하다보니 사회적·제도적 변화에 뒤쳐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영화계 종사자 개인의 인식에 의지해야 할 수 밖에 없다는 게 이 감독의 말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영화계에서 성폭력 범죄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 개인이 가해자를 신고해 사법처리하는 것 말고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 진상조사와 범죄 혐의 입증 과정은 모두 피해자의 몫이다. 문제는 이 과정도 여의치 않다는 데 있다. 매일 촬영 분량이 정해져 있고 이를 늦출수록 비용이 발생기 때문에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은 그 뒤로 밀리고 만다. 무엇보다 현장 책임자들이 '성폭력 사건이 발생해도 피해자가 싸움에서 진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어 문제다. 어느 누구도 싸움에서 지는 사람의 편을 들지 않으면서 피해자는 고립되고 만다. 피해 사실은 조직적으로 은폐·축소되고 사건은 묻힌다. 심지어 피해자는 자신이 피해자이면서도 영화계에서 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공포에도 시달린다.

이 감독은 "영화계 내부에 성폭력 실태를 감시·조사하는 공적 기구와 제도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유무죄는 법정에서 가리더라도 제작자를 포함해 조직의 책임있는 주체들이 사건을 방치하려 했는지 대처를 적절하게 했는지 조사하게 하도록 해야 한다"며, "이런 기구가 존재한다면 영화계 관계자들은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이런 기구가 처음에는 미약하겠지만 상시적으로 운영한다면 제작진은 불편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제가 가장 원하는 것은 현장의 그 불편이 피해자의 신고 때문이 아니라 가해자가 범죄를 저질렀고 또 그것을 방관했기 때문임을 알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피해가 발생했을 때 많은 이들이 선택하는 '침묵'도 지적했다. 이 감독은 "침묵하지 못하게 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질 때 사건은 굉장히 줄 것이다. 영화계는 평판에 예민하다. '성폭력 사건에 연루되면 불리하다'는 인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페미니스트 배우 모임인 '찍는 페미'의 김꽃비 배우도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배우는 "제작자 개인이 윤리적이기를 바라는 것은 물정을 모르는 생각이다. 예방교육을 넘어 캠페인이나 운동이 필요하고, 동시에 규제와 처벌도 해야 한다"며, "성범죄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제작사나 제작자가 얼마나 책임 있게 대응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나 매뉴얼이 필요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때 규제와 처벌하는 쪽으로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여성연예인인권지원센터 소장은 계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윤 소장은 "계약서에 없는 장면은 촬영하지 않아야 하고 추가 촬영할 때는 계약서를 다시 쓰거나 최소한의 문건을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 또 기획사를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바꾸고 허가 기준도 까다롭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피해자를 위해 함께 싸우고 지지하는 모임이 생겨야 한다고 말했다.

한인철 영화진흥위원회 공정환경조성센터장은 그간 상황을 안일하게 생각했다며 사과했다. 한 센터장은 "성범죄 기초조사에서 2014년 1건, 2015년 0건, 2016년 1건(상담)이라는 기록만 보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선제대응해야 했어야 하는데 안일했던 점 통렬하게 반성하고 사과한다"고 말했다. 한 센터장에 따르면, 영진위는 6월부터 영화 산업 내 성범죄 실태조사를 시작한다. 실태조사를 자문하고 영화 현장 성희롱 예방 가이드북을 준비하는 기구도 운영한다. 피해자에게 법률 상담을 제공하고 소송지원 여부까지 판단해 논의한다. 올해부터는 영진위가 지원하는 사업을 하려면 성희롱 예방 교육을 이수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슬 기자  [dew@newshank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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