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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22대 왕 정조의 호남사랑 담긴 친필문서 추정 ‘어제책문’ 공개

등록 2019-01-31 17:42:31 | 수정 2019-01-31 17:45:55

1798년, 호남 인재·명소·문제점·해결책 등 기록…가로 55m 크기
특별 과거시험 문제로 출제…장원 임흥원 선생 답안지 첫 공개
소장자 고전연구소 김경욱 대표 “해독한 뒤 호남의 가치 전파”

조선 22대 왕 정조(正祖·1752~1800·재위 1777~1800)의 호남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는 221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문서가 31일 오후 광주 남구 광주향교 유림회관에서 공개되고 있다. 1798년 정조는 호남에 인재가 많은 것을 인지하고 특별히 등용하기 위해 지역과 관련된 자신의 생각을 가로 55m, 세로 60㎝ 크기의 어제책문(御題策問)에 담아 과거시험 문제로 출제했다. 소장자 김경욱 우천고전연구소 대표가 정조의 친필로 추정되는 문서를 공개하고 있다. (뉴시스)
221년 전 조선 22대 왕 정조(正祖·1752~1800·재위 1777~1800)의 호남에 대한 관심도를 살펴 볼 수 있는 문서가 31일 처음 공개됐다.

‘호남을 인재와 물자가 풍부한 지역’으로 여긴 정조는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 특별 과거시험을 치르게 할 정도였다고 알려져 있으며 문서는 이를 입증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호남문화원은 이날 오전 광주 남구 광주향교 유림회관에서 정조가 1798년 호남의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 직접 만들어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어제책문(御題策問)’과 장원을 차지한 임흥원 선생의 과거시험 답안지(어고과지), 형에게 보낸 편지 등을 처음 공개했다.

공개는 소장자 김경욱 우천고전연구소 대표의 승낙에 따라 이뤄졌다.

가장 먼저 보관함에서 나온 ‘어제책문’은 가로 55m, 세로 60㎝ 크기이며 정조의 친필로 추정되고 있다.

호남지역에 대한 정조의 생각이 빼곡히 적힌 문서는 “호남은 인재와 곡식과 사람이 많은 지역이다. 명성을 전국에 알려 모든 유생들이 학문에 정진하는 풍토를 만들고자 한다”는 내용 등이 적혀 있었다.

또 문서에는 호남의 7가지 문제점과 해결 방안, 각 고을의 명소와 인물 등이 소개됐다.

정조의 호남에 대한 관심은 ‘어제책문’을 내리기 전 자신이 집필한 ‘대학유의(大學類義)’ 등 책을 호남의 유생들에게 검토하도록 지시하면서부터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 특별 선발된 84명의 유생들은 4개월 동안 검토했으며, 정조는 결과물에 대해 감탄을 한 뒤 특별 과거시험을 치르게 했다.

과거시험 문제는 ‘어제책문’에서 출제됐으며 고정봉·임흥원 선생이 공동 장원을 차지했다.

조선 22대 왕 정조(正祖·1752~1800·재위 1777~1800)의 호남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는 221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문서가 31일 오후 광주 남구 광주향교 유림회관에서 공개되고 있다. 1798년 정조는 호남의 인재를 특별히 등용하기 위해 지역과 관련된 자신의 생각을 가로 55m, 세로 60㎝ 크기의 어제책문(御題策問)에 담아 과거시험 문제로 출제했다. 소장자 김경욱 우천고전연구소 대표가 당시 장원을 차지한 임흥원 선생의 답안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빨간색 점은 정조가 직접 채점을 한 흔적. (뉴시스)
어제책문과 함께 공개된 임흥원 선생의 답안지는 가로 88㎝, 세로 164㎝이며, 문제로 출제된 ‘호남의 7가지 폐단과 해결책’에 대한 생각이 작성돼 있었다.

또 답안지에는 빨간색 점이 찍혀 있었으며 이는 채점을 직접 한 정조가 문장에 감탄을 하며 표시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장원을 차지한 임흥원 선생은 고향인 보성으로 돌아가기 앞서 형에게 ‘과거시험에 합격했음을 알리는 편지(가로 86㎝·세로 21㎝)’를 남겼다.

임흥원 선생은 관직을 받기 위해 서울로 가던 중 지병으로 숨졌으며 훗날 승정원 승지에 책봉됐다.

고문서에 대해 설명을 한 김 소장자는 “어제책문과 과거시험 답안지 등은 정조가 합격 선물로 임흥원에 보낸 것이다”며 “임흥원 선생의 집안에서 보관했었지만 관직에 오르기 전 사망해 가세가 급격하게 기울어 시중에 나오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20여 년 전 골동품 판매상이 찾아와 구입을 요구했는데 제시한 가격이 너무 높아 사지 못해 마음을 졸였는데 8년 전 서울의 한 골동품점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며 “호남과 관련된 중요한 문서는 광주에서 보관하고 있어야 할 것 같아 거금을 주고 구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 들어 문서의 가치를 알고 구입을 희망하는 단체와 기업 등이 있다”며 “고문서의 문장을 해독한 뒤 뜻이 맞는 곳으로 보내 호남의 가치를 느끼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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