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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낙태죄는 위헌…2020년 말까지 개정하라” 선고

등록 2019-04-11 15:47:46 | 수정 2019-04-11 16:19:09

“임신한 여성 자기결정권 제한은 위헌”
1953년 규정한 낙태죄 조항 66년 만에 역사 속으로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위헌 여부를 선고하는 11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헌법재판소 정문 앞 모습. 이날 오전부터 낙태죄를 찬성 또는 반대하는 시민들과 단체들이 헌재 정문 앞에서 양 옆으로 나뉘어 기자회견을 했다. 이날 오후 헌재는 낙태죄 도입 66년 만에 해당 조항이 헌법에 맞지 않다고 결론내렸다. (뉴스한국)
헌법재판소가 11일 오후 대심판정에서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제269조 제1항과 제270조 제1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선고했다.

헌법재판관 4명이 헌법불합치, 3명이 단순위헌 의견을 내 낙태죄를 위헌 결정했다. 2명은 합헌 의견을 냈다. 이로써 1953년 낙태죄를 도입한 이후 66년 만에 낙태를 범죄로 규정한 형법 조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헌재 선고에 따라 국회는 해당 조항을 2020년 12월 31일까지 개선 입법해야 한다. 만약 이 때까지 개정하지 않으면 2021년 1월 1일부터 낙태죄 조항이 효력을 상실한다.

현행 형법 제269조는 임신한 여성이 낙태를 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같은 법 제270조는 낙태를 도운 의사를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하도록 했다. 이 두 조항을 각각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로 부른다. 임신부의 동의를 얻어 수십 차례에 걸쳐 낙태 수술을 했다가 재판에 넘겨진 산부인과 의사가 2013년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면서 헌재가 위헌 여부를 따지게 됐다.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유남석‧서기석‧이선애‧이영진 재판관은 “자기낙태죄 조항(형법 제269조 제1항)이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의 유지‧출산을 강제하고 있으므로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이면서 동시에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까지의 낙태에 대해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자기낙태죄가 위헌인 만큼 임신한 여성의 동의를 받아 낙태한 의사를 처벌하는 의사낙태죄(형법 제270조 제1항) 역시 위헌이라고 밝혔다.

임신 22주는 태아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다고 보는 시점이다. 산부인과 학계에 의하면 현 시점에서 최선의 의료기술과 의료 인력을 뒷받침할 경우 임신부의 마지막 생리기간의 첫 날부터 기산해 22주 내외부터 태아가 독자 생존이 가능하다는 게 헌재의 설명이다.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재판관 4명은 낙태를 금지함으로써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게 아니라 여성이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고 낙태를 줄이는 사회적‧제도적 여건을 마련하는 등 사전적‧사후적 조치를 종합적으로 투입해 실질적으로 태아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낙태를 처벌하는 조항이 있다고 해서 실제로 임신부의 낙태 결정을 제한하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자기낙태죄 조항이 낙태 갈등 상황에서 태아의 생명을 실효적으로 보호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모자보건법이 유전학적 문제‧성폭행 임신‧임신부 건강 문제가 있을 때만 낙태를 허용하고 이 외의 경우는 모두 전면적‧일률적으로 범죄로 규율한 상태라 낙태 관련 상담과 교육이 불가능하고 임신부가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는 점을 꼬집었다. 게다가 낙태 수술 과정에서 의료 사고나 후유증이 발생해도 법적 구제를 받기 어렵고 비싼 수술비를 감당해야 하는 만큼 미성년자나 저소득층 여성이 적절한 시기에 수술을 받기 어려운 점을 감안했다.

다만 자기낙태죄 및 의사낙태죄를 단순위헌 결정함으로써 즉각적으로 무효화하면 임신 기간 전체에 걸쳐 행해진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게 돼 용인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이 생기는 점을 감안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낙태 결정 가능기간과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합할지 상담요건이나 숙려기간 등 일정한 절차적 요건을 추가할지 2020년 12월 31일까지 개선하라고 요구했다. 이 때까지 개선입법을 하지 않으면 2021년 1월 1일부터는 두 조항이 효력을 상실한다고 선고했다.

이석태‧이은애‧김기영 재판관은 단순위헌 의견을 냈다. 세 재판관은 헌법불합치 의견에서 더 나아가 임신 1삼분기(대략 마지막 생리기간의 첫 날부터 14주 무렵까지)에는 어떠한 사유를 요구함이 없이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숙고와 판단 아래 낙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기간 전체에 걸쳐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 다만 낙태가 허용될 수 있는 예외적 사유를 법률로써 규정하는 방식은 태아의 생명 보호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이에서 태아의 생명 보호를 단순하게 우선한 것”이라며, “사실상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부정 내지 박탈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태아가 덜 발달하고 안전한 낙태 수술이 가능하며 여성이 낙태 여부를 숙고하여 결정하기에 필요한 기간인 임신 1삼분기에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존중하여 그가 자신의 존엄성과 자율성에 터 잡아 형성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하여 숙고한 뒤 낙태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며, “이때 임신한 여성이 스스로 낙태의 의미‧과정‧결과 및 그 위험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수집할 수 있도록 하거나 이에 관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등의 방법으로써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덜 제한하면서도 그와 동등 또는 그 이상의 공익을 달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낙태죄 합헌의견을 낸 조용호‧이종석 재판관은 “임신 초기 낙태나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게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볼 수 없다”며, “헌재는 이미 2012년 8월 자기낙태죄 조항을 합헌으로 판단한 바 있는데 그때부터 7년이 채 경과하지 않은 현 시점에서 위 선례의 판단을 바꿀 만큼의 사정 변경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슬 기자 dew@newshanku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