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문화

김준수 “국악과 나와도 국악 포기하는 사람 많아요”

등록 2019-05-02 17:53:19 | 수정 2019-05-02 17:58:42

창극 ‘패왕별희’ 스타
뿌리는 판소리
덕분에 국악도 새삼 주목

‘패왕별희’ 김준수. (국립극장 제공=뉴시스)
인기가 천정부지다. ‘국악계 아이돌’, ‘창극계 스타’ 등의 수식은 낡은 표현이 된 지 오래.

김준수(28)는 소리꾼 배우로서 명실상부 창극계 대명사가 됐다.

지난달 국립창극단이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새로 선보인 창극 ‘패왕별희’로 화룡점정했다. 남자 소리꾼으로서 항우의 애첩이자 절세 미녀 ‘우희’를 연기한 김준수는 매혹적인 외모와 절절한 소리는 물론, 고난도 쌍검무를 유연하고 날렵한 동작으로 소화하며 이름값을 확인했다. 커튼콜에서 그를 향한 환호는 어느 뮤지컬스타 이상이었다. 작품의 완성도와 그를 비롯한 배우들의 호연에 사석까지 매진되며 열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일상에서 만나는 김준수는 무대 위 스타가 아닌, 여전히 순진하고 모범적인 청년.

“‘패왕별희’ 공연 기간 팬클럽 회원 수가 늘어나기는 했다”며 부끄러웠다. “머리를 하러 평소 다니던 미용실에 갔는데, 원장님이 ‘패왕별희’를 보시고 제 팬이 됐다고 하시는 거예요. 제 담당은 따로 계신데, 직접 오셔서 잘 봤다며 좋아해주시니 제가 더 감사하더라고요.”

‘패왕별희’가 공연계 이슈로 부상한 까닭 중 하나는 중국의 경극과 만난 작품이기 때문이다. 판소리와 경극의 대표선수들인 작창·음악감독 이자람, 연출가 우싱궈와 대본·안무가 린슈웨이가 뭉쳤다. 청각 중심의 창극과 시각 중심인 경극이 뜨겁게 어우러질 수 있음을 증명했다. 청각과 시각의 공조가 뛰어난 ‘공감각적 심상’의 정점을 찍었다.

특히 배우의 손끝 하나로 세상을 표현한다는 경극의 제스처들이 국립창극단 배우들에게 자연스럽게 입혀졌다. 김준수의 우희는 6장 ‘패왕별희’ 중 항우와 이별 장면에서 능숙하게 양식화된 동작을 소화하며, 절제의 미를 보여줬다. 이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는 관객이 한둘이 아니었다.

김준수는 “좋은 평가에 그간 고생했던 것이 한 번에 풀어지는 듯했어요. 성취감도 느껴졌죠”라며 흡족해했다. “창극에서는 발림으로 몸짓을 구현하는데 경극은 대사를 하는 것으로 손짓, 몸짓을 해야 하니, 상당히 달랐어요. 손 끝 하나 세우는 것도 많은 뜻을 담고 있죠. 춤도 많이 춰야 했는데 우리 리듬, 박자가 아니니 적응도 어려웠죠. 한신을 춤으로 채운 적도 없어서 그것에 대한 부담도 컸어요.”

김준수. (국립극장 제공=뉴시스)
김준수의 쌍검무를 본 사람들은 이 말이 엄살로 느껴질 법도 하다. 그 만큼 유연하고 화려했다. 머리와 허리를 상당히 뒤로 젖혀, 검을 휘두르는 장면에서는 탄성이 나왔다.

“검은 대나무로 만들어졌어요. 연습 막바지에 대만 경극에서 쓰는 것을 공수했죠. 배웠던 검이 아니라, 적응하느라 혼났어요. 재미있게 배웠는데 음악이 들어오니, 더 표현이 없더라고요. 유튜브 영상에서 보고 배우기도 했는데, 어떤 여자 분은 허리를 뒤로 젖혀서 손에 들고 있는 검이 일자로 땅 끝에 닿게 하는 거예요. 저 경지까지는 가지 못하더라도 몸은 사리지 말자고 했죠. 연습 내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어요. 리허설 때는 너무 아파서, 무통 주사를 맞기도 하고요.”

경극의 매력에 흠뻑 빠진 김준수는 경극 관람과 휴가를 위해 최근 타이완을 다녀봤다. 손오공 이야기인 경극 ‘원숭이의 왕’을 봤다. “배우들의 몸짓이나 춤을 실제 보니 놀라운 정도로 대단하더라고요”라고 감탄했다.

국립창극단의 간판스타인 김준수는 전남 강진 출신이다. 초등학교 4학년 담임교사의 권유로 참가한 국악동요대회에서 3등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소리에 반해 판소리 공부를 시작했다. 2009년 임방울국악제 고등부 대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국립극장 ‘차세대 명창’으로 선정되며 소리꾼으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2013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하자마자 창극 ‘서편제’의 어린 동호 역으로 첫 주연을 맡았다. 이후 창극 ‘배비장전’(배비장 역), ‘메디아’(이아손 역), ‘적벽가’(제갈공명 역), ‘오르페오전’(올페 역), ‘트로이의 여인들’(헬레나 역), ‘흥보씨’(흥보 역), ‘산불’(규복 역) 등 다수 작품에서 주역 배우로 활약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이돌 못지않게 팬들을 몰고 다니는 소리꾼으로 유명하다. 그의 공연 날에는 팬들이 줄을 잇는다. 일부 팬은 지난해 ‘트로이의 여인들’ 싱가포르 공연을 원정 관람 오기도 했다.

‘트로이의 여인들’ 김준수. (국립극장 제공=뉴시스)
김준수는 또 퓨전에스닉밴드 ‘두번째달’ 음반 참여, KBS 2TV ‘불후의 명곡’, tvN ‘너의 목소리가 보여’ 등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대중에게 국악의 매력을 널리 알리고 있다.

2017년 문화예술분야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는 판소리를 불러 세계인에게 전통 음악의 매력을 알리기도 했다.

중성적인 매력으로 인해, 우희와 ‘트로이의 여인들’의 헬레나처럼 여성 캐릭터를 남자 창극단 단원들 중에서 도맡았다. 지난 2월 창극계 어벤저스들이 프로젝트성으로 뭉쳐 성소수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창극 ‘내 이름은 사방지’에서 남녀양성을 한 몸에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모욕과 혐오를 뒤집어쓴 ‘사방지’도 연기했다.

창극을 여러 본 관객은 김준수의 다양한 면모를 안다. 하지만 일부 작품만 본 관객은 김준수의 이미지를 고착화시킬 우려가 있다. “제가 여성적으로 비쳐지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염려도 있어요. 하지만 배우로서 더 할 나위 없는 기회죠.”

우희, 헬레나, 사방지 모두 인간적인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특히 사랑, 국경, 생물학적으로 경계에 있어 아슬아슬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어려움이 있지만 배우로서는 도전 의식이 느껴져요. 카타르시스도 있어요.”

김준수 같은 젊은 소리꾼들 덕에 창극은 핫한 장르로 관객들 사이에 인식이 되고 있다. ‘패왕별희’ 덕분에 다른 장르와 만남에서도 유연하다는 인식을 갖게 했다. 뮤지컬 팬들 중에서 창극으로 넘어온 이들도 꽤 된다.

‘흥보씨’ 김준수. (국립극장 제공=뉴시스)
김준수는 “어느 장르와 협업해도 창극의 소리가 녹아 들어가면 잘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예전에는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밖에 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이제는 다양한 스태프와 협업하고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죠. 이제 정말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저희도 궁금해요.”

어렸을 때 국악을 한다면 친구들은 ‘너는 그런 것을 왜 하니’라고 되물었다. 성장해나가면서는 ‘뭐해서 먹고 사냐’는 질문을 자주 들었다. 방송에서는 국악을 찾아보기 힘드니, 소외감도 느껴졌다.

하지만 창극을 통해 소리도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장르로 인식됐고, 젊은 국악인들도 힘을 내 진로를 찾게끔 됐다. “국악과를 나와도 국악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요. 조금씩 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해도, 후배들을 위해 국악을 위한 자리가 더 많아지도록 다양한 장르에서 더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시골에서 산과 들을 연습장 삼아 소리를 하던 소년이 이렇게 국악계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청년으로 성장했다. 뮤지컬계 톱스타인 ‘시아 준수’ 김준수와 이름이 같아, ‘시골 준수’라는 별칭도 갖고 있는 그다.

김준수가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은, 뿌리를 놓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전남무형문화재 29-4호 판소리 ‘수궁가’ 이수자인 그는 ‘판소리를 하는 소리꾼’이라는 본연에 집중, 내실을 다지기 위해 작년에 처음으로 판소리 ‘수궁가’를 완창했다. 앞으로 꾸준히 완창 무대를 선보이겠다는 각오다.

“2년에 한 번씩 완창을 통해 소리꾼으로서 인정을 받고 싶어요. 무엇을 하든 어릴 때부터 좋아해온 판소리를 놓지 않고 꾸준히 길을 걸어가는 것이 제게는 제일 중요하죠. 여전히 소리가 너무 좋거든요.”

판소리는 이처럼 설레는 장르다. (뉴시스)



뉴스한국닷컴 news@newshanku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