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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살리는 일 하면서 죽음을 고민하는 사람들…국회 가득 메운 간호사의 분노와 절규

등록 2019-05-15 23:10:52 | 수정 2019-05-15 23:31:26

국회서 ‘연이은 간호사의 죽음이 가져온 변화와 향후 과제’ 토론회 열려
“담당하는 환자 줄이는 '배치 기준' 정해 간호 인력을 늘리는 게 결론”

1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8간담회실에서 '연이은 간호사의 죽음이 가져온 변화와 향후 과제'라는 제목의 토론회가 열렸다. (뉴스한국)
“간호사들이 사망한다는 건 그 한 명만 괴로운 게 아니라 그 환경에서 똑같이 일하는 간호사들 역시 괴로움을 겪는다는 말이고, 이는 환자들에게도 위험한 일이다.(최원영 간호사)”

지난해 1월 서울아산병원에서 일하던 박선욱 간호사가 사망한 데 이어 약 1년 만인 올해 1월 서울의료원 서지윤 간호사가 생을 마감했다. 서울업무상질평판정위원회가 올해 3월 박 간호사의 죽음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첫 산재 인정이다. 서 간호사 역시 직장 내 괴롭힘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으며 서울시가 위촉한 진상조사대책위원회가 3개월째 진상조사를 벌이고 있다.

두 간호사의 죽음은 개인적인 사건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 타살이라는 게 현장에서 일하는 간호사들과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1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연이은 간호사의 죽음이 가져온 변화와 향후 과제’란 제목의 토론회가 열렸다. 타인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면서 정작 자신은 끊임없이 혹사해야 하는 참담한 구조에 내몰린 간호사들의 분노와 절규가 토론회장을 가득 메웠다. 정부에서 고병곤 고용노동부 산업보건과 사무관과 홍승령 보건복지부 간호정책 TF팀장이 참석했지만 서울시와 아산병원‧서울의료원에서는 토론회 참석을 거절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3월 간호사 근무 환경과 처우를 개선하겠다며 2019년 76억 원을 들여 병원 규모에 따라 최대 5명의 교육 전담 간호사를 배치하기로 했다. 간호대학교 입학 정원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2022년까지 신규 간호사 10만 명을 배출하고, 같은 해까지 2만 2000명의 경력 단절 간호사가 병원에 복귀하도록 지원한다고 했다. 특히 홍 팀장은 TF가 출범한 지 4개월째라는 점을 강조하며, “그간 논의하며 만든 대책과 법이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도 서울아산병원‧서울의료원을 비롯해 100개 병원 및 의료기관의 기획 근로감독을 실시해 간호사들의 노동 환경을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내놓은 해법은 인력난에 허덕이는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방향도 잘못이라는 질타가 쏟아졌다. 간호사들이 요구하는 해법의 골자는 현장에 충분한 숫자의 간호사를 배치해야 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전체 간호사 면허 소지자 수와 환자수를 대비해 비현실적으로 통계를 내는 게 아니라 간호사 한 명이 돌보는 환자 수를 적정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요구다.

2017년 기준 간호사 면허 소지자는 37만 4990명이지만 실제 일하는 간호사는 18만여 명 수준이다. 미국 캘리보니아 주는 주법으로 간호사 대 환자 비율을 1대 5로 정하고, 항암제 투여 등 중증도가 높은 환자가 있을 경우 1대 3으로 정하지만 우리나라는 배치 기준이 없다. 간호인력 수준이 최고라는 서울대병원의 경우에도 간호사 1명이 항암환자 5~6명을 포함해 17~18명의 환자를 돌보는 경우가 있다.

현직에서 일한다고 밝힌 한 간호사는 “TF를 막 꾸렸기에 이제 시작이라는 홍 팀장의 말을 들으니 정말 화가 난다. 2008년도 기사를 보더라도 복지부는 간호사 인력을 확충하겠다고 했다. 십 수 년 동안 반복한 이야기다. 간호사들이 십 수 년 동안 문제제기했기에 복지부도 모르지 않을 텐데 해마다 토론회에 가면 ‘간호 인력 늘리겠다’고만 한다. 문제는 투입하는 게 아니라 간호사들이 현장에 남도록 하는 것”이라며, “간호사가 너무 많은 환자를 돌보는 문제의 핵심을 배제하고 왜 다른 쪽으로 접근하려 하는지 진심으로 묻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의료원에 근무하다가 3개월 만에 그만뒀다는 한 간호사는 울음을 참으며 겨우 입을 뗏다. 그는 정부가 간호사 노동 현실에도 맞지 않는 기본 간호 핵심 술기를 강조하고 있다며 현장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점을 지적했다. 이어 “교과서 이론과 현실이 일치하도록 간호사를 더 배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경력 10년차라고 밝힌 간호사는 “10년 전에는 간 절제‧이식‧공여 환자를 중환자실에서 하루 동안 돌봤는데 지금은 회복실에서 30분~1시간 머물게 한 후 병동으로 옮긴다. 그러면 병동 간호사가 느끼는 중압감은 나머지 돌보는 14명의 환자를 버리고 싶을 정도다”라며,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줄이는 배치 기준 강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내년이면 간호사 경력 30년이라는 현직 간호사는 “많은 이들이 간호사를 날개 없는 천사라고 하며 그 틀 안에서 너무 많은 걸 요구하지만 지금 간호사는 날개도 없고 추락하는데 정부나 병원이나 사회에서 너무 안이하게 대해 화가 많이 난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30년 전에도 간호사 한 명이 18~20명의 환자를 봤고 지금도 병동에서 같은 숫자의 환자를 돌보지만 현재는 중증도가 더 높아졌다”며, “정부는 간호대 입학 정원을 늘리고 유휴 간호사가 복귀하도록 한다지만 본인 생명을 내놓고 일해야 하는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더 이상 병원으로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그는 “간호사가 감당하는 환자 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복지부에 촉구하기도 했다.

홍 팀장은 “간호사 배치 기준 강화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민한다. 일자리위원회를 통해 배치 기준을 강화하는 시범 사업을 진행 중”이라면서도 “다만 큰 병원의 배치 기준을 강화하면 의사‧간호사 등 보건의료인력이 상급 기관에 쏠려 중소 병원에서 간호사 구인난이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배치 기준 강화는 별도로 논의하면서 업무 범위와 관련해 이번 달부터 협의체를 운영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최원영 간호사는 “간호 인력을 늘리는 게 결론이다. 담당하는 환자를 줄이는 배치 기준을 정해야 하는 것”이라며 “정부 정책을 보면 배고프다는 사람에게 돈이 든다는 이유로 밥은 안 주고 ‘왜 배가 고픈지 조사해 보자’거나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안 들도록 명상을 해보자’는 식이다”고 질타했다. 그는 “간호 인력을 늘려서 인건비로 1000억 원을 더 줘야 한다는 말이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문제를 해결하려면 인력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다른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끔찍한 일이 더 벌어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환자가 불필요한 부작용을 겪거나 죽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간호사를 지금의 2배로 늘려야 한다. 정부는 어떻게 국민을 설득해서 간호사 수를 2배로 늘릴 수 있을지 그 조사를 하라”고 강조했다.

서울대병원에서 3년째 일한다는 간호사는 노동부가 실시한다는 기획 근로감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문제를 발견하고도 병원에 해결을 강제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실상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다. 대학병원에서 18명의 환자를 돌보고 중환자실에서는 4명의 환자를 치료하며 힘들게 일했다는 한 간호사 역시 “노동부에서 근로감독을 한다고 하는데 병원에서 17~18시간을 일하고, 저녁에 출근해 점심 먹고 퇴근하면서도 초과 근로 수당을 1원도 받지 못하는 현실을 어떻게 감독할지 정말 궁금하다”고 물었다.

고려대병원에 입사한 지 1년째라는 한 간호사는 간호사 처우 관련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병원에서 압박을 받고 8개월 만에 부서 이동을 겪은 데다 폭언까지 들어 지난해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고 토로했다. 그는 “간호사 개인이 도움을 요청하고 싶어도 어디에 요청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간호사들이 도움을 요청하고 싶을 때 복지부나 노동부 어디에 요청을 하면 되는지 말해달라”고 말했다. 토론회를 진행하던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본부장은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는 이 간호사의 말에 눈시울을 붉히며 “왜 이 질문이 나오는지 통감한다. 저도 밤 10시에 자살 시도 중인 분이 있다는 전화를 받았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경찰서에 연락을 하라는 말만 했다”고 말했다.

고 사무관은 “특별 근로감독에 준해서 기획 근로감독을 한다는 건 많은 인력을 투입하고 시간을 들여서 자세하게 구체적으로 본다는 뜻”이라며, “포렌식이라고 해서 근로 시간을 전산으로 살피겠다”고 말했다 또한 노조 활동으로 압박을 받거나 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을 때는 익명으로 국민신문고 등에 신고하면 조사가 이뤄진다고 답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 발제를 맡은 법률사무소 일과 사람 소속 권동희 노무사는 “사람이 추락해 다치거나 죽는 재해만 산업재해나 기업의 중대 범죄가 아니고 고 박선욱 간호사처럼 업무상 스트레스로 사망하는 것 역시 기업살인이고 중대재해라는 인식 전환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2 제3의 박선욱‧서지윤이 있을 것이라고 서글픈 전망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박 간호사의 경우 산재 인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아산병원이 유족에게 사과조차 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故 서지윤 간호사 시민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김경희 서울의료원 간호사는 “박선욱 간호사 사망 후에도 여전히 1년 미만의 신규 간호사 35%가 과중한 업무로 1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도망치듯이 사직을 한다”며,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은 더욱더 안전하고 건강해야 하며 노동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 생명을 다루는 병원이 간호사를 이윤과 실적을 내는 부품을 계속 쓴다면 강압적인 직장 내 괴롭힘 등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슬 기자 dew@newshanku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