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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고양 저유소 화재 수사하며 경찰이 진술 강요”

등록 2019-05-20 14:21:08 | 수정 2019-05-20 15:40:24

“4차례 피의자 조사하며 경찰관이 ‘거짓말’ 발언 반복”

지난해 10월 7일 오전 11시께 경기도 고양시 대한송유관공사의 지하 탱크에서 불이 나 소방 당국이 진화작업을 했다. (뉴시스)
지난해 10월 경기도 고양시 저유소 화재 사건이 발생한 후 경찰이 피의자로 한 이주노동자를 신문하면서 “거짓말 하지 말라”며 추궁한 건 진술 강요에 해당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이 나왔다.

20일 인권위는 “수사과정에서 경찰관이 이주노동자인 피의자에게 반복적으로 ‘거짓말 아니냐’고 하거나 ‘거짓말 하지 말라’고 말한 것은 자백을 강요한 것으로 헌법 12조에서 보장하는 진술거부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해당 이주노동자의 이름 일부와 국적‧나이‧성별‧비자 종류를 언론사에 공개해 신원이 주변에 드러나도록 해 헌법 17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인권위는 해당 직원에 주의 조치하고 소속 직원들에게 피의자 직무 교육을 실시하라고 경찰서장과 소속 지방경찰청장에 권고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는 경찰이 피해자를 피의자 신문하며 반복적으로 ‘거짓말’ 발언을 해 피의자에게 진술을 강요하고 그의 사생활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조사 결과 피해자는 2018년 10월 8일 긴급 체포된 열림시간을 포함해 28시간 50분 동안 총 네 차례의 피의자조사를 받았고, 기록상으로는 경찰관이 62회(1차 1회‧2차 0회‧3차 5회‧4차 56회)에 걸쳐 피해자 진술이 거짓말이 아니냐고 되묻거나 ‘거짓말하지 말라’ 혹은 ‘거짓말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4차 피의자신문 영상 녹화자료를 분석해보니 경찰관은 피해자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123회에 걸쳐 ‘거짓말’ 발언을 했다는 게 인권위의 설명이다. 유형을 정리해 보면, 피해자가 이미 모순을 지적하는 질문에 답변했는데도 ‘거짓말하지 말라’거나 ‘거짓말 아니냐’고 반복하는 경우가 60회에 달했다. 거짓말인지 묻는 질문에 답했지만 ‘거짓말하지 말라’거나 ‘거짓말 아니냐’고 반복한 건 20회에 이르고, 모순 지적과 무관하게 ‘거짓말하지 말라’거나 ‘거짓말 아니냐’고 반복한 경우는 32회였다.

헌법 12조 2항은 진술거부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형사소송법과 범죄수사규칙 관련 규정을 판단기준에 비추어 보면, 경찰관이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진술을 강요하거나 진술의 임의성을 잃게 할 염려가 있는 언동을 해 피의자의 진술할 권리 또는 진술을 거부할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인권위는 “경찰관의 거짓말 발언은 피해자가 피의자로서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을 진술할 때나 피의자 진술 자체를 부정하는 형태로 등장하는데 이는 사실상 피의자에게 자백을 강요하는 것으로 현행 형사사법체계가 인정하는 정상적인 신문과정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피의자신문은 체포 구속 여부와 무관하게 임의조사에 해당하고 이 과정에서 설사 명백한 증거가 있더라도 피의자 진술과 배치하는 객관적 진실을 그 자체로 피의자 진술을 탄핵하는 증거로서 가능하지 피의자 자백을 이끌어 내기 위해 이를 근거로 압박과 강요하는 걸 합리화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찰이 언론에 피해자의 신상 정보를 공개한 결정 역시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았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피의사실 공표의 필요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경찰이 피의자의 이름, 국적, 나이, 성별 및 비자의 종류까지 상세하게 공개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지 않았다”며, “국민들의 관심사는 국가 주요 기반시설에서 발생한 화재의 원인이지, 공적인 인물이 아닌 이주 노동자의 신상정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설사 개인의 개인정보가 국민적 관심사라 할지라도 수사기관 스스로 무죄추정의 원칙과 과잉금지의 원칙에 따라 공표행위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인권위는 “경찰관의 피의자 신상정보 등의 공개로 인해 피해자 개인은 물론이고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과 무관한 이주 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악화시키는 데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실화의 가능성에만 세간의 이목을 집중하게 하여 안전관리 부실 문제 등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집중하지 못한 결과도 초래했다”고 꼬집었다.



이슬 기자 dew@newshanku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