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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회화’작가 채림 “옻칠은 신의 눈물 시간 지날수록 색이 살아나요”

등록 2019-07-10 17:52:57 | 수정 2019-07-11 12:52:48

학고재 청담서 개인전 ‘옻칠회화’ 대형 ‘보석 설치’ 신작 전시

10일 오전 학고재 청담에서 개인전을 여는 채림 작가가 ‘옻칠회화’를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옻칠은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접착제’다. 그 옻칠이 보석 디자이너 채림(56)에 들러붙었다. 보석 장신구를 돋보이기 위해 단단한 지지체를 찾다 옻칠에 빠졌다. 옻칠의 옻자도 몰라 연구를 시작했다. 국내 최대 옻칠 생산지 원주를 드나들며 전용복 장인으로부터 사사를 받았다. 연습은 힘이 세다. 끈질긴 집착력으로 ‘옻칠 점묘법’이 탄생했다.

보석 디자이너가 찾은 옻칠 점묘법은 일명 ‘보석 회화(Jewelry Painting)’로 거듭났다.

지난해 서울 삼청로 학고재에서 ‘옷칠과 자개, 다양한 보석을 사용한 보석 풍경화’를 선보이면서 주목받았다. 공예계가 아닌 순수회화 상업화랑에서 연 개인전은 보석과 공예적 측면을 넘어 순수미술로 확장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목판에 삼베를 붙여 옻칠로 제주도 풍경을 조각조각 담아낸 옻칠회화 신작 ‘멀리에서 From a Distance’ 2019. (뉴시스)
학고재가 다시 작가를 초대했다. 이번엔 청담동에 문을 연 학고재 청담에서 10일부터 개인전을 연다.

‘멀리에서 : From a distance’를 주제로 본격화된 옻칠 회화와 보석 공예 설치작품을 선보인다. 옻칠 위에 자개, 순은, 호박, 산호, 비취, 청금석과 호안석 등 전통 장신구에 주로 쓰인 보석들을 이용한 지난해 전시와 달리 옻칠 회화 조각, 설치 작품으로까지 진화했다. 보석 세공 고유의 조형미를 그대로 벽에 건 작업은 조명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마치 드로잉처럼 회화적 멋도 더한다.

보석 공예 없이 옻칠 기법만으로 제작한 ‘멀리에서’ 시리즈는 인상주의를 연상시키는 회화 작업이다. “보석의 장식성을 내려놓고 옻칠 특유의 아름다움에 집중했어요.”

인상주의 회화처럼 보이는 모네(Claude Monet)의 지베르니 정원을 방문하면서 영감을 받았다. 지베르니 정원은 모네의 ‘수련’시리즈가 탄생한 곳이다. 이번에 선보인 ‘멀리에서’ 시리즈는 초록의 ‘수련’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가가 경험한 제주도의 기억 속 풍경이다. 멀리서 보면 유화처럼 부드러운 색감을 지녔지만 옻칠 특유의 매끄러운 표면으로 반짝인다.

“옻칠은 습도와 온도에 강해요. 그래서 썩지도 않고, 색바램도 없어요. 크랙이 가는 유화와 달리 공중에 노출되면 될수록 색이 오히려 살아납니다.” 특별히 액자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을 “‘옻이 핀다’고 한다”는 작가는 “옻칠은 끈적거림이 없고 섞임과 동시에 끝까지 자기 색을 내는 게 특징”이라고 했다.

이화여대 불문학과 출신으로 미대에 가고 싶었던 꿈을 결혼 후 이뤘다. 패션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일본 도쿄 에스모드로 유학을 갔다. 낮에는 일본어를 배우고 저녁에는 학교를 다니며 패션에 매달렸지만 우연히 보스턴 뮤지엄에서 본 티아라(작은 왕관)에 넋이 나갔다. 주얼리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또다시 주얼리 공부를 시작했고 10전 9기만에 국제보석감정사(2009)를 취득했다. 현재 국제앙드레말로협회와 프랑스 조형예술 저작권협회의 회원이다.

채림 ‘멀리에서’. (뉴시스)
웨어러블 아트(Wearable Art) 장르로 대담하고 유니크한 주얼리 디자이너로 이름도 알렸다. 하지만 보석은 귀해서 드러나지 않았다. “주얼리는 착용하지 않을 때에는 금고 속에 머물러 있게 된다는 점에 안타까움을 느꼈어요.”

그래서 “주얼리를 미술작품과 같이 벽에 설치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보석 회화’로까지 이어졌다. 옻칠은 물감보다 10배~20배 정도까지 비싸 웬만한 작가들은 엄두를 못낸다. 작가는 “와인이 신의 눈물이 아니라 옻칠이 신의 눈물”이라며 귀함을 강조했다.

“전통에 뿌리를 둔 한국의 아름다움을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의지다. 전통 장인처럼 작업한다. 목판 위에 옻칠을 수없이 반복해 깊은 색감의 배경을 마련한다.

이번에 선보인 신작 옻칠회화(멀리에서)는 그런 측면에서 ‘칠갑을 한 옻칠’로 작가의 대담함과 열정이 엿보인다. 나무판에 삼베를 싸고 두툼하게 생칠을 한 작품은 천 년 만 년 변치 않는 내구성은 물론 작가의 초심이 굳건하게 담긴 것으로 보인다. 현재도 주얼리의 아름다움과 옻칠회화의 우아함을 위해 일본 동경예술대학 칠예학과, 교토 우루시 센터 등을 다니며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고 했다.

자개, 22K 금도금 황동으로 만든 ‘과수원 하늘 Sky in the Orchar’. (뉴시스)
‘보석회화’는 덩굴과 나뭇가지를 연상시키는 조형 요소가 두드러진다. 마치 ‘담쟁이’ 같다. ‘저것은 벽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는 시귀처럼 작가는 보석공예가에서 장르를 넘어 현대미술가로 올라타고 있는 중이다.

컨템포러리 아트는 ‘탈(脫)장르’ 시대다. 하지만 여전히 채림의 작업은 ‘이것은 공예인가 작품인가’라는 의문표를 달고 있다.

미술평론가 김복기 아트인컬처 대표도 작가의 전시 서문에 이렇게 썼다. “채림의 예술은 여전히 가열한 조형적 과제를 안고 있다. 전통을 딛되 그 전통을 넘어 서고, 지금 여기 현대 속을 부딪치면서 그 전통을 현대로 이어가는 일이다. 그의 작품에는 공예/회화라는 장르 문제뿐만 아니라 컨템포러리 아트를 둘러싼 실로 가치 있는 비평 담론들이 잠재해 있다. 전통/현대, 동도(東道)/서기(西器), 평면/입체, 일루전/오브제, 자연/문명, 과거/현재, 순수/실용…. 바로 이 이항대립(Binary)의 축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그 전복 해체 탈구축 종합의 조형적 전개를 지켜보는 일이 마냥 흥미롭다.” 전시는 8월 25일까지.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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