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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문제, 국제법상 韓‧日 공통 정의 생각해야”

등록 2019-07-16 10:20:22 | 수정 2019-07-16 13:00:12

다큐멘터리 ‘주전장’ 미키 데자키 감독 방한
“일본군 ‘위안부’ 기억하는 건 인종차별‧성차별‧파시즘에 맞서 싸우는 것”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 감독인 일본계 미국인 유튜버 미키 데자키가 15일 오후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내한 시사회에서 질문에 답하는 모습. 왼쪽은 시네마달 김일권 대표. (뉴시스)
일본이 일본군 ‘위안부(성노예)’ 문제를 양심과 역사에서 지우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한국인 여성을 강제징집하지 않았고 이들은 성노예가 아니었으며 그 숫자도 20만 명에 이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를 주장하는 피해자 증언 및 전문가 분석과 정면으로 배치한다.

일본계 미국인 미키 데자키(37) 감독이 2015년 10월부터 약 3년에 걸쳐 일본군 성노예를 부인하는 우익 세력의 목소리를 담아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을 만들었다. 일본 우익이 왜 이런 주장을 하는지 정치적 맥락을 짚어내고 무엇이 허구인지 조목조목 비판하며, 이들이 피해자 증언을 어떻게 묵살하는지 보여준다. 2시간이 조금 넘는 상영시간 동안 논리와 진실이 충돌하며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다. 영화의 제목이 전쟁터를 의미하는 주 전장인 이유다.

오는 25일 한국 개봉에 앞서 내한한 데자키 감독은 15일 오전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영화에서 주목한 건 국제법상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정의할지다. ‘성노예’나 ‘강제징집’이란 용어를 두고 개인적으로 상상하는 개념이 있지만 국제법상 정의가 존재한다”며, “국제법적 정의를 시도함으로써 한국과 일본이 공통의 정의를 생각하는 게 문제 해결의 초석이 되리라고 본다”고 밝혔다. 공통의 정의가 없다면 각자 옳다고 믿는 개념으로 돌아가 각자 옳다고 믿는 이야기를 반복한다는 지적이다.

데자키 감독은 “토론에 있어 초석이 되는 바탕이 필요한데 법적 토대에서 찾을 수 있다”며, “변호사와 법률가들에게 듣기로는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제법정에서 다루자는 제안을 거부했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이 정말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정부가 국제법정으로 안건을 가져갈 수 있도록 정부를 압박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 대 국가의 증오심을 넘어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들여다 볼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는 게 데자키 감독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다. 배급사가 기자들에게 배포한 자료에서 데자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한국과 일본 각 나라의 언론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얼마나 편협하게 다루고 있는지 알았으면 한다. 이런 보도가 양국의 적대감을 어떻게 양산했는지도 깨닫기를 바란다”며, “이 영화를 계기로 양국이 증오에서 벗어나 생산적인 대화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데자키 감독이 말하는 ‘새로운 틀’은 일본군 성노예 문제가 국제적인 여성 인권의 문제라는 점이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를 기억하는 것은 그들을 추모하는 것이며 그것은 언젠가 그분들의 정의가 구현되는 희망을 뜻한다. 또한 인종차별‧성차별‧파시즘과 맞서 싸우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1983년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태어난 데자키 감독은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의대 예과생으로 생리학 전공 학위를 취득하고 2007년 일본에 와 야마나시‧오키나와 중고등학교에서 5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유튜브에서 일본과 미국의 차별 문제를 다룬 작품을 제작해 공개한 바 있다. 승려가 되겠다며 태국에서 수행을 한 후 2015년 일본으로 다시 돌아와 조치대학 대학원에서 지난해 국제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가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본 건 일본의 인종차별 문제를 다룬 영상을 올린 후 일본 우익의 공격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앞서 1991년 우에무라 다카시 아사히 기자가 일본에서 최초로 일본군 성노예 기사를 쓴 후 우익에게 인식공격을 당하는 사건을 보며, 그는 우익이 감추려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 취재에 나섰다.

일본인도 한국인도 여성도 아니라는 점 때문에 그는 우익들과 마주보고 인터뷰를 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인 성노예 사건에 있어 ‘3자’의 위치였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할 때까지만 해도 데자키 감독에게 긍정적이었던 우익 인사들은 막상 영화가 개봉하자 기자회견을 열어 데자키 감독이 자신들을 속였다고 주장하거나 명예훼손을 운운하며 그를 압박하고 나섰다. 데자키 감독은 “영화에 역사 수정주의자들을 비판하는 시각이 있기 때문”이라며 “일본에서 정작 해야 할 질문은 ‘왜 이 영화를 보지 않았으면 하는가’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데자키 감독은 “영화 상영 2시간 동안 한국과 일본 각 나라 사람들이 몰랐거나 들은 적이 없는 정보를 안다면 서로를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증오가 줄어들 때 생산적인 토론을 할 수 있다”며, 한국 독자에게는 “일본 정부와 일본 사람의 의견이 다르다. 일본에 안 좋은 감정은 정책에 관한 것이지 사람에 관한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아베 정권이 한국 재판부의 강제동원 판결에 무역제재로 대응하는 건 유감이다. 강제동원 문제는 본질적으로 인권문제이기 때문”이라며, “무역제재를 통해 외교적 문제나 한일 간의 싸움으로 몰아가고 있다. 일본에서는 한국의 공격에 정치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라고 이해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같은 방식으로 해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전장’은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부인하는 논리의 바탕이 아베 정권의 이면과 맞닿아 있는 우익 인사들의 입을 통해 보여준다. 이들이 교과서를 검열하고 미국 언론인에게 돈을 줘 언론을 통제하는 등 행보는 물론 그 속에 숨어있는 의도까지 드러낸다. 데자키 감독과 인터뷰한 코바야시 세츠 헌법학 교수는 “정말 무섭다. 그들은 명백히 전쟁 전의 일본을 신봉하고 있으며 인권 감각이 없고 자신들은 특별하며 지배층이라는 계급의식을 가지고 있다”며, “이런 사람들이 아베 내각을 중심으로 권력을 쥐고 있고 그들이 바라는 헌법 개정은 곧 착수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라는 용어가 지극히 가해자 입장을 담은 만큼 피해자들이 ‘성노예’로 바꿔 부르기를 바라고 있지만 데자키 감독은 그대로 일본군 ‘위안부’를 사용했다.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데자키 감독은 “‘위안부’라는 표현이 그나마 잘 알려져 있고 상대적으로 중립적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데자키 감독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최근 수출 규제 정책을 펼쳐 자신의 영화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고 농을 섞어 말했고, 함께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김일권 시네마달 대표는 “땡스 아베”라고 응수했다. 기자회견 도중 데자키 감독이 “아베 정권의 보복성 경제 조치로 인해 영화가 이슈가 된 것 같다. 영화에 출연한 우익세력들이 이 영화에 대한 상영중지 요청을 했고 이 영화를 보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순차 통역 과정에서 이를 “아베 총리가 영화를 보지 말라고 해 영화가 홍보가 됐다”고 오역했다. 배급사는 기자회견이 끝난 후 기자들에게 문자를 보내 오역이 있었다고 전하며 정정을 당부했다.



이슬 기자 dew@newshanku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