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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내가 김복동이다’ 결단하는 걸 일본 정부가 가장 무서워하지 않을까”

등록 2019-07-25 12:45:51 | 수정 2019-07-25 13:19:44

24일 오후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 언론시사회 열려

영화 '김복동' 중 한 장면으로 김복동 할머니가 수요시위에 참석한 모습. (영화 '김복동' 제공)
30년 가까이 일본 정부에게 일본군 성노예 가해의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던 김복동 할머니가 올해 1월 94세로 숨을 거뒀다. 김 할머니 별세 6개월 만에 그의 생전 행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이 세상에 나왔다. 24일 오후 서울 중구에 있는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언론시사회와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기자간담회에는 영화 ‘김복동’을 연출한 송원근 감독과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김정환 미디어몽구 대표가 참석했다.

송 감독은 ‘김복동’의 메시지가 영화 말미에 나오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의 모습에 함축됐다고 말한다. 길 할머니는 오랫동안 함께 지내다 먼저 떠난 김 할머니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묻는 질문에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좋게 지냈는데도 잘 기억이 안나요.…잊어버리는 약을 먹었나. 아주 그렇게 까맣게 몰라.”

송 감독은 “길 할머니의 ‘현재’가 피해자들에게 닥친 문제가 아닌가 싶다. 영화를 보는 관객 개개인이 이(일본군 성노예 피해) 사실을 명확하게 알고 일본의 주장을 반박할 정도가 된다면 어디서부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이 망각하거나 사망하더라도 살아있는 우리가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대신해 싸워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어 그는 “(일본 정부는) 단 한 번도 피해자에게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는데 문제가 끝났다고 한다. 우리 모두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아는 데서 변화가 시작한다”고 강조했다. 이 말을 하는 동안 옆에 있던 윤 대표가 “지금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는) 21명이 남았다”고 거들었다. 김 대표는 “김 할머니가 영화를 통해 돌아왔다. 같이 싸워야죠”라고 말했다.

영화 ‘김복동’은 일본군 성노예 피해를 고발하는 김 할머니의 육성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김 할머니가 1992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공개 증언을 하기 다섯 달 전에 녹음한 것이다.

“군복 만드는 공장이라 그러대. 다 공장인 줄 알지. 다.…몸 검사를 하더라고. 군인이 이제 검사를 시키는데 떨려서 남 앞에 옷이나 벗어봤나 어쩌나. 안 하려고 막 발버둥 치니까 안 하면 안 된다고 막 억압을 주는데 어떻게 할 거고.…“

김 할머니는 1940년 만 14살의 나이로 일본에 끌려가 중국‧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지옥을 겪은 후 8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날카로운 기억이 김 할머니의 삶을 파고들었지만 피해 고백을 시작으로 그는 ‘피해자’에서 ‘여성인권운동가’‧‘평화운동가’로 변했다. 이후 27년 동안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촉구하며 투쟁했다.

24일 오후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영화 '김복동'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김정환 미디어몽구 대표·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송원근 감독. (엣나인필름 제공)
윤 대표는 “이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이 이 땅에 1926년에 태어나 2019년 숨을 거두기까지 치열하게 살았던 여성이 있었고 그 분의 소망이 아직도 계속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내가 김복동이다’ 결단하면 좋겠다. 그게 일본 정부가 가장 무서워하는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2011년부터 김 할머니와 연을 맺어 그의 활동을 기록해왔다는 김 대표는 가장 인상에 남는 할머니 모습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다음 생애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었는데 할머니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이 가슴에 아팠다. 아이 낳고 행복하게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말이었다”며 울먹였다.

‘관객들이 영화를 어떻게 보면 좋겠나’고 묻는 질문에 송 감독은 “김 할머니는 침착하고 담담하게 상황을 보는 분이었다”며, “영화를 보는 분들도 이런 상황을 열받아하는 게 아니라 (김 할머니의) 메시지를 마음에 눌러 담아 그 힘으로 앞으로 일어나는 일을 차분하게 대응하면 좋겠다. 할머니가 30년 가까이 싸우면서 듣지 못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죄와 법적 배상 및 역사 교육에 있어 이 영화가 변화의 시발점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슬 기자 dew@newshanku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