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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불어도 말에 올랐던 경마기수 문중원 씨는 왜 죽었나

등록 2019-12-02 15:02:16 | 수정 2019-12-02 17:07:40

마사회 비리 고발하는 유서 남기고 극단적 선택

2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지난달 29일 사망한 마흔한 살의 경마기수 문중원 씨의 사망 사건을 두고 한국마사회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마이크를 잡고 있는 사람이 고인의 아버지. (뉴스한국)
"이번에는 되겠지 하면서 5년을 기다렸고, 마방이 비면 배정을 받으리라 기대했지만 조교사 자격 취득 1년도 안 된 측근이 배정받는 모습을 보며 참다 못해…제가 죽었어야 했는데.(문중원 씨 아버지)"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렛츠런파크) 경마기수 문중원(41·남) 씨가 지난달 29일 경마공원 내 기숙사 화장실에서 사망했다. 고인의 시신을 장례식장에 안치하고 그의 아버지가 2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이 연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문 씨는 아들이 조교사 자격을 따고 호주·일본 등을 다니며 경험하는 등 의욕적으로 미래를 설계했지만 마사회 내부 부조리에 앞이 가로막히는 현실을 참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공공운수노조가 공개한 유서에서 고인은 "무슨 말을 먼저 써야할지 모르겠네. 도저히 앞이 보이질 않는 미래에 답답하고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고 토로하며, "면허 딴 지 7년이 된 사람도 안 주는 마방을 갓 면허 딴 사람들한테 먼저 주는 이런 더러운 경우만 생긴다"며 마방 배정 과정의 비리 의혹을 고발했다.

고인은 "이번엔 더 웃겼지. 지난번에 ○○○과 친분이 있는 ○○이가 좀 더 친한 사람들 때문에 할 수 없이 마방을 못 받아서 이번에 줄까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한 사람이 조교사면허를 딱 받아서 와버렸네"라며, "도대체 이럴 거면 조교사 면허는 왜 준 건지. 오랜 시간 노력하고 그 어려운 시험을 치르고 면허를 받은 건데 마방을 받으려면 그 자격이 있는지 또다시 시험을 봐라, 이것부터 말이 안 되는 거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2004년 부산경마공원에서 기수 일을 시작한 고인은 태풍이 불고 안개가 가득한 날에도 말을 타던 기수 생활로 20대를 보내다 2015년 조교사 면허를 땄다. 조교사는 말을 훈련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경주마가 경주를 할 수 있도록 훈련하고 경주 능력을 높이도록 관리하는 일을 한다. 고인은 조교사 면허를 취득했지만 5년 동안 마사대부가 되지 못했다. 마사대부는 조교사 자격이 있는 사람 중 마방을 배정받은 사람을 말한다. 마사회는 마사대부에게 24~45개의 마구간을 유상으로 배정하고, 마사대부는 마주에게 영업해 말을 수급한다. 경주에 출전할 기수를 섭외해 마사회가 공시한 경주 일정을 신청하고, 경주에서 순위에 들면 그에 따른 상금과 마주에게 받은 위탁관리비로 마방을 운영한다.

공공운수노조는 고인의 죽음이 갑질과 부조리가 만든 타살이라고 규정했다. 노조는 기자회견문에서 "마방 운영 권한은 마사회 간부의 친분에 따라 낙점됐고 고인은 자격을 따고도 5년이나 마방 운영 기회를 받을 수 없었다"며, "복마전 마사회의 부조리가 결국 문중원을 죽였다"고 호소했다. 또한 부산경마공원이 개장한 이래 고인의 죽음이 여섯 번째라고 지적하며, "죽음 앞에 성찰과 반성이 없는 마사회가 연이은 죽음을 만들고 있다"고 질타했다.

유족은 고인이 유서에서 언급한 마사회 불법과 부조리를 진상규명하고, 갑질과 부조리 행위당사자를 처벌하는 등 적극적인 제도 개선을 하며, 마사회가 당사자로서 공식적인 사과를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한 자녀 등 유가족에게 위로 보상하라고 촉구했다. 유족은 마사회가 이러한 요구사항을 해결하기 전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국마사회는 지난달 30일 보도자료를 내고 고인과 유족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히며 진상규명 차원에서 부산강서경찰서에 고인이 유서에서 언급한 부정 경마 및 조교사 개업 비리 의혹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마사회는 정확한 사인 규명을 하도록 경찰 조사에 최대한 협조하는 한편 내부 감사를 시작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채용비리'와 관련, 조교사는 개별사업자로서 한국마사회와 고용 관계에 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한편 경찰은 고인이 유서에 쓴 대로 기수에게 부당한 지시가 있었는지 또한 조교사에게 마방 운영 기회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부조리가 있었는지 수사한다. 마사회가 조교사에게 마방을 임대할 때는 사업계획 등 정성평가와 확보한 경주마 수를 근거로 한 정량평가를 2대 8 비율로 합산하는데 이런 기준을 제대로 적용했는지 들여다볼 예정이다.



이슬 기자 dew@newshanku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