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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보컬 최초 파리 오피시에 훈장…나윤선의 ‘몰입’

등록 2019-12-04 17:47:53 | 수정 2019-12-04 17:53:15

슈발리에 받은 지 10년 만…12일 제주 시작 전국투어

나윤선. (엔플러그 제공=뉴시스)
“삶이 점점 단순해지는 것 같아요.”

3일 오후 서울 삼성동에서 ‘재즈 위의 구도자’를 만났다. 재즈보컬 나윤선이다. 그녀는 미니멀리즘을 보여준다. 특정 분야의 거장들이 갖고 있는 경지다.

특히 대중적으로 크게 히트하기 힘든 재즈 장르에서 오랜 기간 흔들리지 않고 정수를 찾는 건 힘겨운 일이다. “골짜기를 올라갈 때도 있었고, 언덕 위로 내려갈 때도 있었지만 평지를 쭉 걸어오고자 한 것 같아요.”

평소 말투도 낭창낭창 시적인 나윤선의 노래는 그녀의 삶을 담보로 잡아 만들어진 것이다. 오늘 공연하고 내일 공연을 위해 이동하는 일상은 단순해질 수밖에 없다.

나윤선은 “여행 가방도 점점 가벼워져요. 예전에는 여행용 트렁크를 두 세 개씩 끌고 다녔는데 지금은 옷 두 세 벌이 전부”라며 빙그레 웃었다.

반면 나윤선의 성과는 점점 쌓인다. 지난달 28일 서울 서대문구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 프랑스 정부의 문화예술공로훈장인 ‘오피시에장’을 수훈했다. 한국 보컬 중 이 훈장을 받은 것은 나윤선이 처음이다.

1957년 프랑스 문화부에서 제정했다.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 탁월한 창작성을 발휘했거나, 프랑스와 세계 문화 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야 수훈할 수 있다.

11월 28일 나윤선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장 수훈 모습. (엔플러그 제공=뉴시스)
나윤선은 여기에 프랑스와 한국이 교류를 하는 데 역을 한 점도 공인 받았다. 2015년 나윤선이 예술감독을 맡았던 국립극장 ‘여우락 페스티벌’에서 만난 한국의 대금 연주자 이아람과 프랑스의 플루트 연주자 조슬랭 미에니엘은 여전히 협업 중이다.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는 프랑스 마을에는 나윤선의 이름을 딴 ‘윤선 나 도로’가 생기기도 했다.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은 최고 등급 순으로 코망되르(Commandeur), 오피시에(Officier), 슈발리에(Chevalier)의 세 가지로 나뉜다. 이미 나윤선은 2009년 세 번째 등급인 슈발리에를 수훈했다. 10년 만인 이번에 상위 등급인 오피시에를 이번에 수훈했다.

나윤선은 슈발리에 훈장을 받기 직전을 떠올렸다. 당시 공연을 위해 말레이시아에 머물렀던 나윤선은 꿈을 꿨단다. 평소 꿈을 잘 안 꾸는데 그날 꿈은 선명했다. 집이랑 주변이 유리알처럼 투명한 물에 잠겨 있었다.

“물이 얼마나 맑은지요. 주변에 물어봤더니 좋은 꿈이라고 하더라고요. 이후 e-메일을 받았는데 제가 프랑스 문화예술공로 훈장을 받게 된다는 거예요. ‘가문의 영광’이었죠. 그런데 10년 만에 한 등급 위의 훈장을 받게 되니 스피치를 하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프랑스는 문화 종사자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재즈 페스티벌만 500여 개가 있다. 나윤선은 이 부분이 멋지다면서도 “우리도 곧 그렇게 문화적으로 풍성해질 것”이라며 긍정했다.

나윤선은 음원으로 음악 시장이 재편된 시대에 음반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주는 음악가이기도 하다. 지난 4월 자작곡 6곡을 포함 총 13트랙을 가득 채운 정규 10집 ‘이머전(Immersion)’을 발매했다. 이 앨범은 ‘음반이 살아 있는 생물’임을 보여준다.

음반을 통해 공연이 더 많아진 것뿐만 아니다. 어쿠스틱 사운드를 다양하게 변형하며, 사운드 실험을 한 앨범인데 수록곡들은 다양한 반응을 흡수하며 진화하고 있다. “이전 앨범이 더 좋다”, “새로워진 모습이 좋다” 등 의견이 분분했는데 나윤선답게 “모든 말씀이 소중하다”고 겸손해했다.

나윤선. (엔플러그 제공=뉴시스)
“덕분에 수록곡을 재편곡해서 연주하고, 어쿠스틱인데 일렉트로닉 사운드처럼 들리게 하는 등 앨범 발표 이후에도 다양한 시도를 많이 했어요.”

나윤선은 1994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 한 이후 유럽 최고의 보컬리스트가 됐다. 현지에서 매년 100회에 가까운 무대를 소화하고 있다.

드디어 2년 만에 한국에서 전국 투어도 앞두고 있다. 해외에서 워낙 빠듯한 일정 탓에 한국 공연은 팬들 사이에서 ‘내한공연’으로 명명된다.

12일 제주(제주아트센터)를 시작으로 13일 부산(영화의전당), 15일 청주(청주예술의전당), 17일 강릉(강릉아트센터), 19일 천안(천안예술의전당), 22일 춘천(춘천문화예술회관), 24일 울산(현대예술관), 25일 고양(고양아람누리), 27일 인천(아트센터인천), 28일 서울(롯데콘서트홀), 30일 광주(광주문화예술회관)를 돈다.

나윤선은 바쁜 스케줄 가운데서도 최대한 많은 지역에서 공연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의 전국 투어에 앞서 5~7일 열리는 ‘2019 진주 국제 재즈 페스티벌’에도 출연한다.

“재즈는 직접 들어야 하는 음악이에요. 공부한다고 해서 잘 알 수 있는 음악은 아니니까요. 음악은 주관적으로 듣는 거지만 세상에 못 들어본 음악이 얼마나 많아요. 기회가 된다면 최대한 많은 음악을 듣는 것이 중요하죠. 저 역시 마찬가지죠.”

나윤선을 단순히 ‘한류 재즈스타’로 명명하는 것은 부족하다. 한국적 정서를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한국적 정서를 자연스레 풍기는 ‘진정한 코즈모폴리턴’이다.

나윤선. (엔플러그 제공=뉴시스)
“만약 유럽식의 정서를 따라가고자 했으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해서 오히려 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죠. ‘저는 저니까’요.”

그럼에도 나윤선은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유럽과 북아메리카 대륙 사이에 위치한 그린란드에는 독특한 보컬 테크닉을 사용하는 가수들이 있다며 “그곳에서 노래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역사는 쌓이지만 재즈가 늙지 않은 음악인 이유를 나윤선을 통해 깨닫는다. 이처럼 유연한 재즈와 나윤선은 언제나 젊다.

마지막으로 나윤선의 ‘지금 이 순간’을 표현할 수 있는 노래가 무엇인지 물었다. 2010년 독일의 세계적인 재즈 레이블 액트(ACT)를 통해 발매한 7집 ‘세임 걸’ 수록곡 ‘마이 페이버리트 싱스’를 꼽았다. ‘엄지 피아노’로 통하는 아프리카 민속악기 ‘칼림바’를 나윤선이 직접 연주하며 부른 곡이다.

“훈장을 받은 것도 감사하지만 제 주변에는 항상 감사하고 ‘좋아하는 것들’이 널려 있어요. 노랫말의 마지막 부분처럼 슬픈 상황에도 그것을 떠올리면 저를 슬프지 않게 만드는 것들이죠.”

그러면서 나윤선은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삽입된 이 곡의 원곡으로, 줄리 앤드루스가 부른 버전을 꼭 들어야 한다고 했다. “앤드루스와 그녀의 목소리가 얼마나 예쁜지…. 정말 사람을 힘나게 해요. 하하.”

“당신 역시 줄리 앤드루스 못지않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기 직전까지 갔다가 겨우 참았다. 그 말에 보조개를 감춘 채 진짜 부끄러워하며 겸손할 나윤선임을 아니까.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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