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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야성 서울의 값싼 전기는 월성 주민 94명의 몸을 타고 왔다

등록 2019-12-07 17:39:44 | 수정 2019-12-09 08:53:56

다큐멘터리 영화 '월성' 남태제·김성환 감독, "월성 주민이 안전해야 우리도 안전"

다큐멘터리 영화 '월성' 포스터.
다큐멘터리 영화 '월성(감독 남태제·김성환)'이 오는 12일 개봉한다. '월성'은 경상북도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 있는 원자력발전소의 이름으로 유명하지만 1989년 '경주군'으로 이름이 바뀌기 전까지 양남면·양북면·김포읍은 월성군이었다. 영화의 제목 '월성'은 원전 이전부터 이곳에 살던 월성 주민을 의미하기도 한다. 비영리 독립언론을 표방하는 온라인 매체 '뉴스타파'가 기획·제작한 다큐멘터리 '월성'의 언론시사회가 6일 오후 서울 대한극장에서 열렸다.

1975년 월성원전 1호기를 착공하고 1982년 가동을 시작한 지 37년이 지나고 있다. 그 사이 월성원전 2·3·4호기와 신월성원전 1·2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2012년 1호기 설계수명 30년 허가기간이 만료해 지난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이사회가 1호기 폐쇄를 결정했다. 원전뿐만이 아니라 월성은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을 가동하고 사용후핵연료 즉 고준위 핵폐기물까지 끌어안고 있다. 월성이 '원자력 종합세트'로 불리는 이유다.

다큐멘터리 영화 '월성' 중 한 장면.
월성 주민들은 원전이 처음 들어설 때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라는 말을 믿고 안심했다. 원전이 내다보이는 바닷가에서 단합대회를 했고 원전을 배경으로 가족사진도 찍었다. 원전 앞바다에서 물질을 하고, 지하수를 마시고, 그 지하수를 먹고 자란 곡식과 과일을 먹고 살았다. 그렇게 흐른 시간이 37년이다. 주민들은 이제 원전 없이 살고 싶다고 말한다. 주민들은 암으로 죽거나 암과 싸우거나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원전과 가까울수록 원전과 가까운 집에 오래 머물수록 삼중수소 등 방사성물질에 노출됐다.

월성원전 1호기를 만들 때 반경 914m를 거주제한 구역으로 설정했고 그 안에 사는 주민들만 보상을 받고 이주했다. '914m' 기준의 합리적 기준이 무엇인지는 3년 동안 월성 주민을 취재한 남태제 감독도 알지 못한다고 했다. 게다가 원자로가 늘면 거주제한 범위도 늘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원전에서 0.95km 지점이라고 방사능 위험에서 자유롭지는 않을텐데 아무런 보상도 이주대책도 없다.

다큐멘터리 영화 '월성' 중 한 장면.
월성원전 1호기에서 1km 떨어진 곳에 사는 황분희 할머니는 갑상선암 환자이고 3년 전 4살이었던 손자의 몸에서는 어른의 2~3배가 넘는 삼중수소가 나왔다. 월성 주변에 살며 갑상선암 진단을 받은 환자는 94명이다. 이 외에 고리원전 주변에는 251명, 울진원전 주변에서 147명, 영광원전 주변에서 126명이 암 진단을 받았다. 이들 618명은 한수원을 상대로 공동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영화 '월성'은 차분하고 담담하게 월성을 끼고 살아가는 주민들의 삶을 비춘다. 관객들에게 탈핵이냐 찬핵이냐고 묻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사용하는 값싼 전기의 대가가 단지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전기요금 뿐이냐고 묻는다. 월성에서 300여km 떨어진 서울의 불야성이 과연 어떻게 만들어진 전기로 완성한 것인지 묻고 있다. 영화 상영시간 83분 내내 일면식 없는 월성 주민들의 삶을 허투루 볼 수 없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남 감독은 "이 영화를 두고 탈핵이냐 찬핵이냐는 질문은 거절한다. 그보다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하느냐 질문해야 한다. 누군가의 인생을 담보로 행복하다면 그게 행복한 삶일 수 있느냐는 질문 말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정의'와 연관지을 수 있다. 이건 정의에 관한 영화다"고 말했다.

6일 오후 서울 대한극장에서 '월성'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남태제 감독과 김성환 감독. (뉴스한국)
남 감독과 공동 작업한 김성환 감독은 "원전 문제를 풀자고 할 때 원전에 찬성하든 혹은 반대하든 그 속에서 주민들은 항상 소외시켰다. 하지만 주민들을 중심에 두고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닐까. 우리만 안전하다고 되는 게 아니지 않나. 우리는 안전하고 그분들이 안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분들이 안전하면 모두가 안전하다"고 말했다.

월성 주민 94명을 포함한 원전 인접지역 주민 618명의 공동 소송은 2014년 2월 시작해 지난해 10월 10차 변론기일을 끝으로 재판이 열리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재판부가 네 차례 바뀌었다. 네 번째 재판부는 해당 소송이 '균도네' 소송을 계기로 시작한 만큼 항소심 결과를 일단 지켜보자며 심리를 중단한 상태다.

균도네 소송은 부산시 기장군에 사는 이진섭· 박 모 씨 부부와 아들 균도 군이 한수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말한다. 이 씨의 직장암과 박 씨의 갑상선암 그리고 균도 군의 자폐증이 거주지 인근의 고리원전에서 나온 방사성 물질 때문이라며 2012년 7월 소송을 시작했다. 1심은 이 씨의 직장암과 균도 군의 자폐증이 방사선 노출과 관계있다는 연구가 없다며 기각했지만 박 씨의 경우 기준치 이하 방사선이라도 장기간 노출된 상태에서 갑상선암에 걸렸다면 한수원에 책임이 있다며 15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월성' 중 한 장면. 한수원에 이주대책을 요구하는 월성원전 인접주민 황분희 씨가 시위하는 모습. 6년 전만 해도 시위 참가자가 30명이 넘었지만 지금은 8명이다.
영화는 월성 주민들이 들뜬 마음으로 균도네 항소심 선고공판에 참석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항소심에서도 균도네가 이기면 판례를 근거로 월성 주민을 포함한 618명이 배상받을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4년 8개월만에 원심 판결을 뒤집었다. 박 씨의 갑상선암 발병 원인과 피폭선량 사이 역학적 상관관계가 있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고 봤다. 균도네는 패소했지만 이에 불복하고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월성 원전 주민들은 균도네 소송 결과를 지켜보며 절망했지만 공동소송은 포기하지 않고 이어가고 있다. 한수원은 "주민 피폭 방사선량은 법에서 정한 피폭선량 허용기준치인 연긴 1밀리시버트에 현저히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런 수준의 방사선량과 갑상선암 발병 사이에는 인과 관계 또는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공동소송 변호인단은 "아무리 미량의 방사선이라도 DNA가 방사선의 공격을 받으면 상처를 입고 잘못된 복구를 하느라 발암에 이른다는 건 현재 확인된 발암 구조다. 미량의 방사선이 암의 원인이 되지 않는 것은 피고가 입증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이슬 기자 dew@newshankuk.com